어여쁜 웃음 뒤엔 그 사람이 서 있다
당신은 외투를 집어 들고
해변으로 걸어간다
얼기 시작한 귀를 뜯어내어
막 떠오른 흰 새에게 붙여준다
닫힌 문 안쪽에서 말들이 뛰고
멎지 않는 피처럼 눈이 내리는 저녁
망치질 소리가
내 귀 안에 쌓이고
- 윤은성, '밤의 결정'에서 ("주소를 쥐고", 문지 2021)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며 손에 꼭 쥔 실타래에선 번번이 툭 끊어진 실을 만질 때가 있다
끄트머리를 안다는 일은 되감고 매듭을 짓는 일 이어 붙이는 일들도 함께 안다는 것이어서
전화기의 줄을 확 잡아당겨 끊는 경우는 사라졌고 대신에 종료버튼을 꾸욱 누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켜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다시 실타래를 감으면
풀어놓았던 먼지들 하나둘 되감겨
더 이상 날아오르지 않게 되고
사람을 생각한다는 일도 전화기를 다시 켜고 이름을 지우지 않은 채 기다리는 일이어서
은빛 달빛 진회색 검정 같은 빛들이 먼지를 닮은 감정으로 풀풀 일었다가
다시 고요히 내려앉는 아침
머뭇거림이 영글던 전화기 너머
어여쁜 웃음 뒤엔 늘 그 사람이 서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