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어여쁜 웃음 뒤엔 그 사람이 서 있다 (퇴고)

단정, 2024. 5. 22. 15:59

 
 
 

   어여쁜 웃음 뒤엔 그 사람이 서 있다 

        
      

   
      당신은 외투를 집어 들고
      해변으로 걸어간다
      얼기 시작한 귀를 뜯어내어
      막 떠오른 흰 새에게 붙여준다
     
      닫힌 문 안쪽에서 말들이 뛰고
      멎지 않는 피처럼 눈이 내리는 저녁
      망치질 소리가

      내 귀 안에 쌓이고
   
      - 윤은성, '밤의 결정'에서 ("주소를 쥐고", 문지 2021)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며 손에 꼭 쥔 실타래에선 번번이 툭 끊어진 실을 만질 때가 있다
  
   끄트머리를 안다는 일은 되감고 매듭을 짓는 일 이어 붙이는 일들도 함께 안다는 것이어서

   전화기의 줄을 확 잡아당겨 끊는 경우는 사라졌고 대신에 종료버튼을 꾸욱 누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켜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다시 실타래를 감으면

   풀어놓았던 먼지들 하나둘 되감겨
   더 이상 날아오르지 않게 되고

   사람을 생각한다는 일도 전화기를 다시 켜고 이름을 지우지 않은 채 기다리는 일이어서

   은빛 달빛 진회색 검정 같은 빛들이 먼지를 닮은 감정으로 풀풀 일었다가
   다시 고요히 내려앉는 아침
    
   머뭇거림이 영글던 전화기 너머 
   어여쁜 웃음 뒤엔 늘 그 사람이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