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종로에서 아는 사람 다섯을 만났다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5. 1. 06:20

  

  

  

   종로에서 아는 사람 다섯을 만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정오께의 종로를 우연히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색한 미소로 인사하면서 지나치곤 했지 

 

   정독도서관에서 한강을 닮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고 

     

   뒷모습을 한참 쳐다봤어 머리카락이 너무 하얗게 세서 

   아직도 멀쩡한 나는 글쓰기가 부족해서일 거라고 믿었지 

 

   새벽마다 글쓰기를 연습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리 똑같애 

   부지런한 새가 일찍 죽는다던 허튼 농담이 더 지겨워서 그래 

   

   소격동 골목길에서 회사 사람을 만났는데 인사도 없이 

     

   유니폼만 서로 힐끗 쳐다보았어 각자의 점심시간을 잊은 채 

   다가올 구조조정의 순간들을 서로 애도하며 분주하기만 할 뿐 

 

   직급을 없애겠다며 너도 나도 프로 골퍼가 돼버린 순간부터 

   각자도생의 길은 너무나 익숙해 협동이 없는 미래는 사라졌고  

 

   멀쩡히 걷던 길에도 가끔 이상한 아줌마가 등장하곤 했어 

    

   외국말로 칼국수집이 어딨냐고 묻던 아줌마는 내 서투른 영어에 

   구글 번역기를 들이대 모국어조차 능통하지 못한 내가 창피했고 

 

   우쥬 플리즈 스피크 인 잉글리쉬? 아이 돈 케어 디시즈 베리 굿 

   오케이 굿 럭 땡큐 아이 홉소 바이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경복궁 안을 걷다 보면 

   

   이웃 회사에서 안면이 있는 이를 발견했고 왜 떠도냐며 웃었고 

   함께 제주도를 여행 간 적이 있는데 가족들의 안부도 물어봐야지 

 

   점심시간의 광화문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 보이는 미래도 밝아 

   온다는 새벽에 양복 입고 물대포를 맞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치? 

 

   다시 광화문, 내가 그립던 낙타 

   

   반갑게 웃으며 볼을 꼬집고 낙타도 웃었는데 

   뙤약볕을 숨을 장소가 없어 함께 손을 잡았고 

 

   잘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네 저도요 

   잘 지내나요? 잘 지내요 잘 지내나요? 네 그럴게요 

 

   함께 교보문고 방향의 수국을 찾으러 길을 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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