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황무지

정독, 베짱이 2024. 4. 27. 06:09



  
   황무지
  
  
  

   미나리꽝엔 미나리가 쑥쑥 자라고
   달은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고
   여린 꽃잎은 돼지의 못잔등을 때리고
   깻잎머리 여중생들이 놀이터에서 침을 퉤퉤 뱉다
   돼지를 만나는 봄밤이다 봄밤에는 돼지가 자란다
    
   - 장옥관, ‘봄밤이다 1’에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2022)



  
   기억은 늘 다가온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지만 어김없이 다가온다
   다가와서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곁에 앉는다
   그럴 적마다 저어하는 표정으로 또 쳐다보지만
   안중에도 없는 기색으로 그렇게 다가와서는
   그동안 무얼 했냐면서 금세 까먹은 거냐면서
   묻지도 않고 아무 말없이 그렇게 곁에 앉는다
  
   기억이 앉아 있는 자리에 민들레가 핀다
   홀씨를 가득 실은 줄기가 자라고 흔들리고
   바람이 불어 흩뿌린다면 그 잎들만 남겠지
   본질과 목적이 뒤바뀌고 잔해가 되는 순간  
   그 잔해를 황무지라고 착각하는 순간
   하늘로 오른 홀씨들이 착지하는 순간

   길 가다가 주웠다며 네 잎 클로버를 건넨다
   행복도 아닌 행운을 가져다준다며
  
   너는 웃었고
  
   보고 싶었냐며 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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