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유보적인 단어들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9. 23. 07:30

   
   
   
   유보적인 단어들 
 
 
 

   이상하지 않니 
   저 아름다움을 관찰하기 위해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문을 열면 어둠이 이동한다 
 
   눈밭 위에서 우리는 덜 검은 것이라 불리기에 적당했다 
   입고 온 하얀 스웨터를 부를 다른 말을 찾아야 했다 
 
   - 김리윤, '비결정적인 선'에서 ("투명도 혼합 공간", 문지 2022) 

 
 
 
   한참을 서성였다 
   마지못해 한 마디 말이 식사 인사라면 우린 헤어졌을까 
   끝끝내 답을 찾지 못하였고 
 
   함께 한 시절들이 있어서 좋았다 
 
   어느 차가운 겨울밤 네가 건네준 따뜻한 위로처럼 
   어느 선선한 새벽에 말갛게 웃던 네 대화창처럼 
   때때로 신선한 기운은 연초록 잎으로 무성하고 
 
   함께 그리워한 시절들도 있었다 
 
   어느 봄비가 창문을 두드리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고 
   어느 장면에서는 눈자위가 흐려지기도 했었다 
 
   남들 몰래 키워온 사랑은 그만큼 유보적이었다 
 
   때이른 새벽 
   공중전화 부스가 사라진 거리에서 핸드폰을 만지작대다 
   끝끝내 전화를 걸지 못하였고 
 
   부재의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져야만 했다 
 
   철 지난 단어들을 잠시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유보적인 계절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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