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나이테
계단을 세워 제단을 덧대서
죽음과 죽음 이후의 기분을 꺼내고
가장 먼 곳에 차려질 식탁을 준비한다
이름을 부르는 쪽에
이름이 저무는 쪽에
긴 문장을 새긴 채 대답을 비워둔다
벗어나려고 찾은 입구와
굳어지기 싫어하는 발목
- 정영효, '도달할 미래'에서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문학동네 2023)
등단생활 15년 동안 시집 한 권인 시인의 시를 읽으면
습작생활 30년 내내 시집 한 권인 나 역시 과작이었고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슬픔과 죽음에 대해 한참 동안을 생각했으며
사랑과 헌신에 대해 한참 동안을 고민했으되
넘어진 자전거 뒤에 선 채로 물끄러미 본 하늘
영그는 잎사귀들과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보았어
그리움이 그리움이 아닐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고단함이 고단함이 아닐 수 있는 법을 찾았고
그리하여,
지혜를 갖추는 일은 도대체 얼마나 부질없으며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 또 얼마나 행복한가를
찾았어,
찾고 있어서
또 다른 책을 읽고 지나쳐온 책들을 다시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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