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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린 속을 부여안은 채 너는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4. 18. 04:18

   
  
  
   쓰린 속을 부여안은 채 너는 
    
   
 

   엑스트라 배우가 카메라 조명을 벗어나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진단을 받고 치료를 포기하고 혼자 깨어나 
   천장을 바라보는 새벽 
    어둠이란 지도 위의 한 점이 아니다. 
 
   - 이장욱, '깊은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보기' 중에 ("음악집", 문지 2024) 

   
    
 
   흐려진 화면 위 몇 개의 물방울이 떨어지던 순간 
   기어코 아무 말없이 화면을 닫은 적이 있었다 
   
   이른 새벽 쌀쌀한 공기 
   그제부터는 역류성 식도염 약을 먹기 시작했고
   초여름의 한기가 약기운처럼 몸속을 파고든다  
 
   따뜻해지면 좋겠어, 
 
   좋겠어서 이불을 다시 감싸 쥐고 누워서 
   물끄러미 예전 대화들을 되짚어보는 순간이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동이 트는 일만 같아서 
   단 한 번 절망한 적 없이 인내심을 키워온 것뿐 
 
   때때로 반갑게 인사하던 때를 그리워한다면 
   지독히 주고받은 상처만큼 네 속도 많이 아팠을까 
   
   쓰린 속을 부여안은 어두운 아침도 정겹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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