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박정대, '음악들' (현대시에서의 '낭만'을 이야기하려거든)

단테, 정독 2023. 8. 9. 05:26




[베껴쓰고 다시읽기] 현대시에서의 '낭만'을 이야기하려거든 (박정대, 음악들) :



  음악들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 2001) 



  -



  '낭만'이라는 단어가 일제시대 때의 유산인 까닭에 원래의 어원인 'Roman' 따위로의 변경을 시도해본 전력도 더러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줄곧 '낭만'을 사용해온 건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단어가 갖는 'Context'에도 또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 시절엔 낭만이란 게 있었어" 따위의 회고담들은 이미 잊혀졌거나 또는 그게 아쉬울 법한 소감 등에서의 주된 용례가 되곤 하는데, 만일 현대시에서 그 단어를 찾아본다면 대뜸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박정대 시인입니다. (다소 과격하긴 해도)
  개인적으로는 시집 "아무르 기타"에서의 서정적인 시편들이거나 또 다른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에 등장한 매우 긴 시인 '의기양양' 같은 작품을 대표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분량이 너무 긴 관계로... 오늘 아침엔 그의 데뷔시집만 살짝 꺼내보겠습니다. 표제시 성격을 갖는 '음악들'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