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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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슴 연못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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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릿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문장으로,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겠지만, 저는 이 문장을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우리 마음은 정처 없습니다’로 의역하길 좋아합니다. 계속, 정처 없겠습니다.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수상소감 중에)
수상 후보작들은 권박, 김승일, 김현, 송승언, 안희연, 이영광 이영주 등이었습니다. 어쩌면 '미래파' 이후 현대시가 거쳐온 이정표 또는 가야 할 길을 밝히는 등대들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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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슴 연못
백록담이라는 말에는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
이곳의 사슴 다 잡아들여도 매해 연말이면 하늘에서 사슴이
눈처럼 내려와 이듬해 다시
번성하곤 했다는데
이제 하얀 사슴은 백록담이라는 말
속에만 살고
벌써 백 년째 이곳은 지용의 『백록담』 표지에서
사슴 모두 뛰쳐나가고 남은
빈자리 같아
그래도 이곳의 옛 선인들이 백록으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백록은 어쩌면 동물이 아니라
기운에 가깝고
뛰어다니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것에 가까워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백록담』 표지 밖에서 표지 안으로
돌아오는 것도 같고
하얀 사슴 몇 마리가 백록담 위를 찬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은
청량해진다
연못에 잠시 생각의 뿔을 담갔다
빼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지용이 『백록담』을 썼을 때 사슴은 이미 여기 없었다
표지의 사슴 두 마리는 없는 사슴이었고
길진섭의 그림은 그저 상상화일 뿐이었는데
어인 일일까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살이 오른 사슴들이
빈 표지 같은 내 가슴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와
마실 물을 찾는다
놀랍게도 물은 늘
그곳에 있다
# 2023년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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