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합창단
푸석푸석한 지하도 계단을 올라서면 뜨거운 햇빛
그 밑에서 유니폼을 맞춘 소녀들이 다시금 모여 서서
온갖 율동과 가느다란 일렬횡대의 목청을 돋울 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가시처럼 돋아나는 담배
먼 고향을 떠나온 목동들이 십자성을 향해 내뿜던
그 푸른 그리움의 몸짓을 익히 알아온 터였다
지금은 목이 마르고 내 구두 밑에 심지로 박히는
저 뜨거운 염증의 기억을 나는 곱씹고 있는 건가
지휘를 맡은 아이의 어깨엔 금박 휘장 자랑스럽다
기차표를 예매하는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들의 어깨 옆을 스치는 내 목덜미에 힘줄이 솟고
발걸음도 무거운 채 흘깃 쳐다보는 행인들 사이엔
희미한 무지개가 살포시 피어오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 십자가가 거꾸로 매달린 때
나도 저 대열을 이탈하고픈 유혹에 괴로워하던 시절
아직도 이 곳에선 기다림이 쉽지 않은데
나의 도피는 그리도 쉽게 이루어졌었나 보다
역 광장 바깥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복음가는
저만치서 대열을 향해 목적지의 팻말을 든 낙타
예매 창구 앞에서 자리를 못 잡은 노파가 합장을 하고
내 주변에선 아직도 이렇듯 많은 이들이 서성대는데
확신에 찬 저 구도는 지나친 독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뒤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의 피곤한 어깨 그 겨드랑이로
바람 한 점 휘이익 불어 날리면서 감추어지는 환멸
저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제각기 그 붉은 그림자를
여기저기에 떨쳐낼 고해성사를 갖기만 하고
주식값이 조간신문 사회면보다 더 약삭빠르게 뛰는 연말
많은 이들이 여전히 남과 상관없는 소원을 기도하는데
매섭게 옷깃을 스치는 숱한 무신론자들의 이단 앞에서
아이들의 합창 소리는 너무도 연약해 보여
대열 주위의 인파가 조금씩 드문드문해지는 저녁
무지개가 피었던 곳에 환하게 네온사인이 밝혀지고
어둑어둑한 짐을 꾸려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엔
동전을 싣고 달리는 승강장의 행렬만이 점점이 박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