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박형준, '이 봄의 평안함' (문예지를 추억하는, 또 다른 봄)

단정, 2025. 3. 14. 10:08

 

 

  

   이 봄의 평안함 
   

   
      
   강이나 바다가 모두 바닥이 일정하다면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깊이가 같을 것이다

   그러면 나무의 뿌리가 땅 밑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허공을 물들이는 잎사귀의 춤 또한 일정할 것이다

   저기 나무 속에서 사람이 걸어나오도록 인도하는 것이 
   봄이라면 
   마음속에서만 사는 말들을 꺼내주는 
   따뜻한 손이 또한 봄일 것이다 
   봄꽃들은 허공에서 우리를 기쁨에 넘쳐 부르는 손짓이며 
   누군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 또한 그처럼 잊힌 누군가를 향해 가리라  

 

  

 

   * 박형준,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 

 

 

 

   ... 

 

 

     

   문예지를 추억하는, 또 다른 봄 : 

 

 

  

   바야흐로 봄입니다. 

   화이트데이 날 새벽부터 난데없이 20여년 전의 촛불집회 장면부터 떠올린 건 순전히 작금의 시국이 영 불안해서입니다. 아무튼, 

   박형준 시인의 최근 시집인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에 실린 이 시는 원래 월간 문예지인 <문학사상> 2014년 3월호에 실렸던 작품이었죠. 작년에는 이 역사성을 갖는 문예지의 폐간 소식을 가슴 아프게 전해 듣기도 했었고요... 바야흐로 문예지 '도약'이 아닌 '종말'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의 범람, 점점 더 짧아지기만 하는 신호체계와 유행, 오히려 대중들과는 더욱더 거리가 멀어진 듯한 문단 내 분위기 등이 모두 공범일진대 그렇다고 대놓고 탓하기도 뭣한 속절없음의 시절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제 문예지들을 '사랑'할 때가 아니고 '추억'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바닥이 일정하다면" "깊이가 같을 것"이기에 "춤 또한 일정할 것"입니다. "춤"이 뜻하는 바는 '사랑'일 수도, '의지'일 수도, 또는 흥에 충만한 '유희'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삶에의 애착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기에 시인의 소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마음속에서만 사는 말들을 꺼내주는" 봄이라면... 또 "누군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면"... 비로소 시인은 "잊힌 누군가를 향해 가리라" 다짐을 합니다.  

   굳이 "제도권 등단"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아도 좋을만큼 이미 상당 부분 '민주화'가 된 글쓰기의 풍경들과 단 한 줄 평이라도 애틋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독자들의 반응이라면 응당 시인이 설 자리는 그 어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비쳐 봅니다. (웃픈 얘기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시들을 소비하고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서점도 출판사 카페도 아닌 SNS에서의 다양한 대화창들이라는 점 또한 그저 업신여길 대목만은 아니겠으니까요.) 

   네이버 블로그 기반의 웹진 <시인광장>이 출범한 지도 어언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달부터는 "문학포털"이 정식으로 오픈한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2030 세대 문청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은 (하필 성향들이 좀 그렇긴 하지만) 웹 기반의 모 커뮤니티이기도 하죠... 

   새로운 문예지의 태동은 어쩌면 이렇듯 전혀 새로운 '플랫폼'을 토대로 해 생겨날 공산이 커 보입니다. 앞으로의 시단 역시 이 추세에 걸맞는 모종의 모색과 행보를 이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게 비록 종이매체와의 결별이든, 정기간행물이라는 타이틀의 포기를 뜻하든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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