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속삭임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별들의 속삭임을 들어본 건 아마
야쿠트인들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소리에
별들의 속삭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 없었을 테니까
너무 춥지 않았더라면
너무 추워서 하늘을 날던 새들이 나는 도중 얼어
땅에 쿵,
얼음덩어리로 떨어질 정도가 아니었더라면
별들은 속삭이지도 않았을 거다
별들의 속삭임은 가혹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가혹한 lo-fi 사운드
그것은 가청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아름다움이고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사탕처럼 깨지며 흩날리는
가루 소리를 듣고
머리가 당장 깨져버릴 것처럼 맑을 때
머리가 벌써 깨져버린 것처럼 맑을 때
그런 맑고 추운 밤이면 사방 어디서라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 들려온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창비, 2023)
...
'포스트 황인찬'을 향한 아쉬운 기대감 :
사실상 젊은 '기성시인'들의 경연장 역할에서 이제는 아예 '진짜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로 다시 자리매김을 한 듯한 김수영 문학상의 역대 수상자 목록 중 맨 마지막 '기성시인'이기도 할 황유원 시인의 신작 시집이 재작년에 창비를 통해 출간된 바 있었죠. (물론 작년도 수상자 역시 모처럼 다시 기성시인들 중에서 배출되긴 했지만요.)
전작인 두 권의 시집들을 통해 나름대로는 충분히 '황인찬 신드롬'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까지 만들던 시인도 정작 본인의 생활고는 역시 넘어서기 힘든 무참한 '벽'이었을까요... 가장 최근에는 번역서들을 들고 신문에 홀연히 나타난 그의 최근 모습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아무튼,
몇 해 전의 현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하얀 사슴 연못'을 표제시로 내건 이번 시집에서 가장 눈에 띌 법한 시로는 두 번째 시편으로 실려 있는 '별들의 속삭임'을 꼽고자 합니다. (이경규 코미디물 시리즈로도 유명한 '별들에게 물어봐'와는 사뭇 다른 기조를 갖는 정서이니 큰 오해가 없었으면 하고요.)
시베리아 야쿠트인들의 생활 풍습인 '별들의 속삭임'은 혹한 속 입김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광경에 대한 표현인데, 절묘히 이를 차용한 시인의 제목은 그 이름이 갖는 '미학' 중에서도 하필 그 '가혹'함과 '사탕처럼 깨지며 흩날리는' 아픔 따위에 천착하기만 합니다. 시인이 갖는 근본적 정서야말로 어쩌면 무참히도 아름다운 '허무'가 아닐까 싶어 짐짓 저어되는 구석이 생깁니다만, 만약 그렇다 해도 그것을 형상화낸 솜씨는 이루 말할 데 없이 아름다운 '무심'이겠습니다. (동의하느냐의 여부와는 전적으로 별개인 문제)
일상적이고도 세세한 표현들이 짐짓 전체적인 시의 구상과도 연관을 맺고 이를 지지하는 장치들로 작동하게 만드는 건 충분히 검증된 시인의 기량 탓이기도 할 텐데, 한편으로는 그런 류의 어프로치가 왜 과연 개인사 내지는 심리적 상태에만 국한돼 작동하게 될까에 관한 강한 의문은 여전히 남겨두도록 합니다. (지난 연말의 자잘한 일상들을 온통 압도할만한 시끄러운 소식들로 들끓던 와중에도 이 곤궁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아낸 신춘문예 당선작이 전무했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제 불만이 어떤 부분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따로 갖진 않으셔도 될 듯해서요.)
* 단정, 20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