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앨범/필사

김규항, 아포리즘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알마, 2017)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7. 7. 05:41

   

  

   

   김규항 

 

   글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불편함을 수반하더라도 좀더 사유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에 함께 다가가는 도구다. 모든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문장은 군더거기가 적을수록 아름답다.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 문제를 벗어나 저마다의 쓸모없는 것들에 골몰하는 세계를 소망한다. 지은 책으로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예수전> 등이 있고,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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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촉에 익숙해지면 향기를 잊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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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외롭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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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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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로든 인류로든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건 

   언제나 인간 자신이다.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들인지 

   우리가 잘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같이 한심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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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이고 합리성이고 이전에 염치가 있고 

   자의식이 있어야 사람이다. 

 

 

   어느 단계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수정란, 아니 난자 한 개라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될 생명이지만, 진정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단계'부터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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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모습에서 겸손보다 더 품위 있는 건 없다. 

 

 

   내 생각을 말할 때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생각은 실은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수많은 체험과 충격과 학습과 주입 따위들이 내 신체를 거쳐 흐르다 남긴 자국 혹은 상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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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다.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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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프게 수행한 사람일수록 

   사회 현실을 초월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나 석가가 인민 속에서 중생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건 수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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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는 깨지고 흐트러진 세상의 조화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평화는 단지 온화한 미소가 아니라 

   종종 분노와 함성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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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극소수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수의 사회 성원들이 열심히 일해도 살기 어렵고 

   불안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랑에 폭력이 공존할 수 없듯 민주주의엔 

   신자유주의가 공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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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익'은 지배계급이 제 이익을 속여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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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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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은 화려할수록 쉽게 소비되며,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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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파성만이 '집단'을 '연대'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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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은 불편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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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뒤틀리고 나빠질 때는 반드시 개념이 먼저 

   뒤틀리는 법이다. 

 

   프레임 싸움은 단지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실은 프레임이 바뀌는 것, 

   기존의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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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 지도되거나 지배되는 것, 

   정치의 상상력에 머물거나 매몰되는 것은 

   예술이 아니거나 한심한 예술이다. 

 

 

   예술가의 본색은 '착한 행동'이 아니라 '나쁜 행동'에 있다. 예술가는 여기저기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상찬 받으며, 의식 있는 사람으로 행세하려는 중산층 인텔리의 속물근성에 봉사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불온한 상상력으로 오히려 누구도 함부로 상찬하기 어렵도록 불편을 행사하며, 현재의 세상과 포탄처럼 충돌하는 '나쁜 사람'이다. 

 

   나는 "예술이 어때야 한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한다. 예술은 그런 당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어떤 것이다. 그리고 당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런 당위에 집중하는 예술조차 자유롭게 구가되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 명의 사람들이 만 개의 내용으로 "문학은 이런 것이다!" "예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떠들어대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이며 가장 예술적인 사회의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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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항, 아포리즘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알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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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 

   - 김규항 아포리즘.  

 

   진짜 '좌파'의 생각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