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처럼 앉아
은은하게 빛나던 색을 우리는 알았다
발음해 보면서 궁글어지는 맛
호박 몇 조각을 뒤집어 보면서
"눈은 방향이 없구나"
둥근 유리 주전자 속에서
오래도록 우러나는 호박
물속에서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서로를 밀어내면서
기억이 났다 실처럼 오래 풀리느라
컴컴해진 실내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서로 같아진 손의 온기
누군가는 밖으로 나갔다
눈은 이곳에 없어도
누군가는 만족스럽다
"내가 정물처럼 앉아 있으면
당신이 나를 그려 주기를,
사람으로"
눈이 그쳤고
실내가 다시 밝아 오고 있었다
* 김석영,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민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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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
정물처럼 앉아 있었던 시간들이 있다
더는 걷지 않아도 좋을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