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아침이 잔인하다면
나로부터 사과 한알이 떨어진다 덜 익은 껍질을 속옷처럼 입고 거리와 부딪친다 사월이 주워 담지 못한 한마디 끝없이 구른다 사월이 끝나도 나는 끝나지 않듯이
- 한재범, '사월이 좋아'에서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창비 2024)
꽃잔디가 한가득인 거리엔 봄바람이 일고 봄의 바람이 몽글한 구름들 곁으로 흐르면 이윽고 아침이 찾아온다
초미세먼지가 가득한 창문 밖을 쳐다보면 마스크를 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걷고 있다 초미세먼지만 평등한 것이지 마스크는 그렇지가 못해
간밤에 흩뿌려진 대화들이 차곡차곡 쌓인 숫자들만 어김없이 시간을 재촉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순간에도 계속 누군가는 밀어를 시도했지만 또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고픈 시절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는 늘 불평등해서 똑같은 말을 달리 해석했고 뉘앙스는 제각각이었으며 기분의 상태를 느끼기엔 더 어렵다는 말도 있었다 레토릭이 늘 문제였다
할 말 못할 말을 가리면서 수북한 감정들을 쌓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말이 아닌 숫자들로 그 감정을 해석할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말이 언어가 아닌 숫자로 표현될 때가 더 많아진 시절
비로소 숫자들을 지우며 차근차근 정리를 할 때면 새로운 아침이 헌 아침을 비워내는 장면들이 때때금 황무지** 같다 새로운 식물들은 곧 자랄 테지만
다시 꽃잔디 속으로 들어가면 이윽고 아침
* 황지우, 산문집
** T. S. Eliot,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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