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로 떠난 미인
나는 같은 남자와 두 번 연애에 빠졌고 두 번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택시는 종로1가에서 종로2가로, 동대문으로 미끄러지듯 미끄러지고 있었다. 안녕.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관 한 명이 갑자기 모자를 벗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공기를 휘저어댔다. 너무나 깨끗한 거리였고 어느 누구도 겁에 질리지 않았다. 달리는 사람은 헉, 헉, 헉, 입김을 내놓는다.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 김행숙, '깨끗한 거리'에서 (이별의 능력, 문지 2007)
백만 원을 훔쳐 달아난 직원을 쫓고자
온 직원이 수소문하며 혼비백산인 동안
나는 시큰거리는 허리채만 붙잡은 채
찡긋, 하며 사라지던 표정을 기억했고
덴마크에서 살고 싶어요
이랬다면 또 단서가 될까...
어디로 간 것 같냐고 묻던 직원에게
코펜하겐으로 가보라고 일러두었다
백만 원이 아깝지도 않은
우리 회사 최고의 미인
맑고 투명하던 이마 희고 긴 손가락
정말로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
어떤 직원은 프로포즈도 고려했겠고
또 누군가는 약속을 청하기도 했으니
그들의 이토록 놀라운 일사불란함은
그 친구가 훔친 백만 원 탓이 아닐 법
그 친구를 포기 못하는 일
백만 원이면 고작 비행기값일 텐데
그렇다면 굳이 쫓아갈 필요도 없고
돈은 좀 모아두었을까가 더 궁금해
덴마크는 그리 행복한가가 궁금해
무슨 일을 할까 역시도 궁금해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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