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주민현,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공식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법)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1. 26. 07:53

  


 
 
[베껴쓰고 다시읽기] 공식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법 :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땐
   비스듬하게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요
   사진기를 모자처럼 쓰고요
   철로 위로 방금 뜬 해가 빛날 때
   그러나 해는 늘 가려져 있던 것이고
   오래된 베레모와 벨루가의 장난기를 섞어
   삶의 증오와 미움을 한 발짝 맛있게 끓여요 
   
   철로에 앉은 제각기 다른 머리색만큼이나
   우리의 고민은 풍요롭고요
   양들이 씹어 먹는 게 이야기라면
   흰빛들이 세상엔 불어날 거지요 
  
   내가 쓰는 이유 당신이 말하는 이유 우리가
   말하는 것들
   오래된 산책 속에는
   극장과 서점이 사라진 도시가 있고 
   
   폐업, 폐쇄, 반복되는 임시 개점과 휴업
   선생님, 임대료는 점점 높아지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고
   당신이 말하지요 
   
   조용하고도 요란스럽게
   내리는 비
   젖고 있는 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머리에
   비스듬하게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요 
   
   거북은 계속되는 삶을 살고
   문 닫은 안경원 앞에서 놀고 있는
   두 개의 작은 머리통을 오래 바라보고 있어요 

  
   
   * 주민현,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창비, 2023) 
 
 
   어느새 주말입니다. 창비시선이 이제 곧 500호를 돌파할 듯한데, 이 시집이 490호이므로 비교적 최신작에 속하는 주민현의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비스듬히 바라보"고 "증오와 미움을 한 발짝 맛있게 끓여"내고 "고민은 풍요롭고" 시인은 "쓰는 이유"와 "말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픈데, 막상 "극장과 서점이 사라"졌고 "반복되는 임시 개점과 휴업"이 있고 "임대료는 점점 높아지"기만 합니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한동안 그런 워딩이 유행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방정식"이며 "인생의 몇 가지 공식들"이며 한 것들인데, 솔직히 말해 얼치기 또는 돌팔이의 처방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곤 합니다. 쉬운 문제들은 그만큼 가벼운 무게들 뿐인 법입니다. '사랑'과 '인생' 등에 있어서 대단한 공식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데 그만한 무게, 즉 그만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겠죠. '삶'이라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Multiple Integral과 Simplex Method를 동반한 고등수학은 그저 사칙연산에 불과할 뿐인 초등학교 탐구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만점도 없는 이 시험문제는 그저 부단한 학습과 훈련만이 부분점수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차원에서의 '넉넉함' 역시 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황지우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게 곧 '놀랍도록 진지함'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제법 풀렸습니다. 오늘은 거문고입니다.
   이번 한 주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eGerT_7dR3c?si=CzmxBykJ6b-4Jrg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