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연구] '낭만'이란 무엇인가? (박정대) :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으므로 너무나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등 뒤로는 음악 같은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서러운 풍경의 저녁이 짐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한 점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영원은 그렇게 본질적인 불꽃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 순간 타오르기도 한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그날 내가 불멸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뿌연 공기들을 헤치며 이 지상에는 없는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내가 한 마리의 식물처럼 고요했던 시간, 내가 한 그루의 짐승처럼 그렇게 타올랐던 시간, 바람과 불의 시간을 지나 공기의 정원에서 내가 얼음꽃을 피워 올렸던 그 단단한 침묵의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그런데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늘 불멸을 꿈꾸었지만, 그렇게 불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오히려 불멸이 너무나 낯설었는데, 어쨌든 불멸은 내가 갔던 거기에, 그렇게 당도해 있었다
네가 불멸이니, 그때 너무나 당황했으므로 나는 속으로 그렇게 물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불멸이 이제 나에게 당도했으므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른다, 오랫동안 불멸을 꿈꾸어 왔지만 불멸이 나에게 당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불멸 앞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불멸도, 사랑도, 내 생각으로는 그저 저 스스로 존재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에게 또 불멸의 아름다운 시를 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쓰지 않는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느끼는 자의 내면 속에서 수시로 숨쉬고 존재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가 아니므로 불멸이 아니고, 불멸이 아니므로, 이것은 불멸의 시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이 글에서 시를 읽어내려고 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그러나 시 아닌 그 무엇을 읽어내려 했다면 이미 당신은 또 하나의 불멸인 것이다
그대를 찾아 나섰다가 나는 불멸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불멸이 몹시도 불편하고 어색하다
불멸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불멸이 아니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불멸에 닿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 별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불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먼 훗날, 태양이 식어가고 낡고 오래된 천막 같은 밤하늘의 모퉁이에서 서러운 별똥별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살아 있으므로,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를 꿈꾸어다오
- 박정대, 아무르 기타 (문학사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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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hani.co.kr/arti/culture/book/4822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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