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D-4.
(중앙일간지 리뷰, 5/6//7) 세계/조선/한국일보 신춘문예 :
이제 올해 신춘문예도 그 막바지 단계에 접어드네요...
주말특집인 관계로 나머지 세군데의 신춘문예를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세계/조선/한국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및 한국일보까지의 최근 5년간 당선작 및 심사평 요약입니다. ;
1) 세계일보
2019년 : 박신우,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심사 - 천양희, 최동호)
"「풍선론」은 이미지도 분명하고 시적 언어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옥탑방의 화자를 통해 발견이라는 새로움을 무리 없이 전개하고 있었다. 먼저 시적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풍선론」이 앞서 있었으나 그로 인해 발전 가능성은 작아 보였고 마지막 결말의 처리가 추상적이었다.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여기서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고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2020년 : 김지오,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심사 - 김영남, 최동호)
"상당한 논의 끝에 김지오의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를 당선작으로 한 이유는 대화체, 소설화법을 활용한 내용 전개의 신선감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외설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 속 심벌을 화두로 내세워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능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같은 마지막 부분의 발랄한 표현이 이를 증명할 것으로 본다."
2021년 : 변혜지, 언더독 / 한준석, 돌고래 기르기 (심사 - 김영남, 이학성)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2022년 :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심사 - 안도현, 유성호)
"이신율리씨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였다.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
2023년 : 민소연, 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 (심사 - 안도현, 유성호)
"당선작으로 선정된 민소연씨의 ‘드라이아이스’는 전언의 구체성과 표현의 개성, 착상과 비유의 구현 과정이 매우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었다. 특별히 드라이아이스가 가진 물리적 속성과 사랑의 제도적 결실인 결혼의 상징적 속성을 연동하면서 펼쳐낸 희뿌옇고 서늘한 감각이 탁월하게 다가왔다. “영원한 타인”과 살갗이 들러붙는 과정을 발견한 순간이야말로 ‘결혼기념일’의 가장 큰 페이소스이자 빛나는 선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2) 조선일보
2019년 : 문혜연, 당신의 당신 (심사 - 문정희, 정호승)
"내적 운율과 침묵으로 함축되는 시의 본질적 부분이 신인들의 시에서 도외시되는 까닭은 산문성에 기울어진 한국 시단의 유행을 비판 없이 쉽게 따른 탓이다. 산문 시대일수록 시인이라면 시의 고유한 본질을 지켜나가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2020년 : 고명재, 바이킹 (심사 - 문정희, 정호승)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한 단면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본심 심사 대상이 된 시의 경우, 소통하기 어려운 시가 많았다.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해서 그 언어의 유기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삶의 내용이 내포되지 않은 시의 언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고 형식만 남음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한국 시의 위기다.”
2021년 :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심사 - 문태준, 정끝별)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2022년 : 고선경, 럭키슈퍼 (심사 - 이문재, 정끝별)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중략)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2023년 : 이진우, 홈커밍데이/멜로 영화 (심사 - 장석주, 김기택)
"생의 변곡점일 수 있는 순간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쥐고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명증성을 붙잡은 한 응모자의 ‘멜로 영화’ ‘홈커밍데이’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시들은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연스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이 응모자가 첫 시집을 낸다면 서점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구입해 읽고 싶다는 게 우리 속마음이다."
3) 한국일보
2019년 : 노혜진,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심사 - 김민정, 황인숙, 서효인)
"요즘 시가 시답지 않게 길다, 최근 시는 언어를 정제하지 못한다, 산문시의 경향이 한국시를 망친다 등등.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노혜진의 시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가령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라는 다소 소설적인 문장은 시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에 비해 길게 나열된 ‘엄마’의 특정되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렇게 우아해진 부분 외 나머지 것들을 더 궁금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전개를 시적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2020년 : 차도하, 침착하게 사랑하기 (심사 - 박상순, 김민정, 서효인)
"다락방에 몇 년은 묵힌 것 같은 누르스름한 종이에 볼펜으로 눌러쓴 시가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가정사의 고달픔과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쓴 것이었는데, 시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다. 당연히 박스에 다시 들어갈 원고였지만 어쩐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시가 되든 안 되든 쓴다는 행위의 거룩한 순간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시를 보낸 모든 이들이 이미 시인이라 믿는다. 그분 중에서 한 명의 시인을 공식적으로 호명할 수 있어 두렵고 영광이다. 안타깝고 기쁘다."
2021년 : 신이인,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심사 - 서효인, 장석주, 김소연)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2022년 : 오산하, 시드볼트 (심사 - 송재학, 김상혁, 김소연)
"본 심사평은 시의 어디어디가 부족하다는 식의 충고를 담고 있지 않다. 자기 작품에 관한 엄혹한 평가를 원하는 분도 있겠고, 적절한 지적은 실제로 창작과 퇴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투고자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응원이라고 믿는다. 계속 시를 써도 좋다, 이런 말을 누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시가 나를 부른 적도 없고, 그래서 나 없이도 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아 싫고 무서웠다. 이번 심사평을 통해 당신들 없이는 우리 시가 별로 안녕하지 못하리라는 예견과 확신을 전하고 싶다."
2023년 : 이예진, 나의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심사 - 이수명, 김민정, 박준)
"시와 문학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순하게 응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하는 일에만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가며 여전히 읽고 쓰는 일만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낙선한 분들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시와 살아낼 시간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도 함께.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의심을 품어야 할까. 그러면서도 어떤 온전한 미감에 깨어지지 않을 삶을 기대야 하겠지. ‘신춘문예’. 계절만 벌써 새봄이다."
멜로 영화
- 이진우
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
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
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
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
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
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
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
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다고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누군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등뒤에서 들려오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의 배후엔 본 적도 없는 관객을 다 아는 세력이 있죠
문득 다시 궁금해집니다
뻔한 것들엔 아무 이유도 없는지
안 봐도 안다는 말에 미안함은 없는지
우리의 관계는 상영시간이 지난 티켓 한 장일 뿐이므로
텅 빈 극장엔 불행과 무관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테지만
그것들은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슬픈 꿈을 꾸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 202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오늘의 신청곡 ::
Elton John - Tonight (1976)
https://youtu.be/SMjtD-dpnOk?si=u2gz5-7JIx1uRv2I
![](https://blog.kakaocdn.net/dn/bVcrc3/btsAVpW8No0/AfDPWm6WSfk3HnLeO8B7S0/im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