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연구] 시 안에 chapter를 두는 방식 :
연마다의 인위적 분절, 약한 연결고리의 상쇄, 많은 분량의 적절한 호흡조절, 상이한 내부구조 간 통일된 룰의 설정 등 다양한 목적에서 비롯되는 편입니다. (굳이 번호를 매기지 않아도 될만한 다른 장치들도 많은데, 아무튼 이 방식의 시쓰기가 지난 시대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도 매우 흔히 접해온 방식인만큼 때로는 “각잡고” 써야 하는 경우에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돈할 때에도 요긴한 경우들이 많겠죠.)
- 어제 필사를 했던 유진목 시인의 경우입니다. ;
작가의 탄생
1.
나의 총은 1980년에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다. 총알은 배 한가운데 정확히 왼편의 삼 분의 일 지점을 뚫고 나갔다. 그 일로 나는 집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뭉근해진 내장이 배를 타고 흘러내렸고 한동안은 그것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늙은 개는 냄새를 맡고도 금방 일어서질 못했다. 먹으면 안 돼. 그럼 우린 함께 살 수 없어. 나의 개는 그럼에도 쏟아진 내장을 몇 점 주워 먹었다.
2.
나는 아이를 가졌고 이듬해 3월 셋째 날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흘을 앓다 죽은 아이를 배 속에서 꺼내어 묻고 아침이 올 때까지 엎드려 울었다.
3.
나의 아이는 불행히 살겠지만 언젠가 스스로 불행을 극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닮아 사람을 멀리하고 늙은 개를 아끼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처받을 것도 생각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집 한 채와 총 한 자루가 전부였다. 마당에는 먹을 것이 있었고 언제든 그것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나는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총을 겨누는 법을 알려 줄 것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는 혼자 생각한 것을 적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고 나는 늙은 개를 앞세워 세상을 떠날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한번은 나와 같이 개를 묻고 또 한번은 혼자서 나를 묻고 나처럼 엎드려 울 것에 가슴이 아팠다.
4.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았는지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너에게 주는 총이 네 아비를 죽인 총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너를 만나고 싶어서 남자를 집에 들인 일은 말할 것이었다. 아이는 나를 증오하고 때로 내가 죽인 남자를 그리워하며 잠들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나 내가 죽인 남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몰랐다. 늙은 개를 사랑해서 나보다 사랑해서 이 집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들과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날들을 견디며 한집에서 살아갈 것이었다. 아이가 더 이상 나를 견딜 수 없는 날에는 나에게 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이가 엉망이 된 집을 치우지 않아도 되도록 밖으로 나가 방아쇠를 당길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마지막인 날들을 살아갈 것이었다.
5.
늙은 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마당의 남자가 배를 채울 때까지 창문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 뒤 문을 열고 잠시 들어오겠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더러운 발로 집에 들어와 내가 가진 것들을 살펴보았다. 앞으로의 날들에 기대를 품는 것 같았다. 멍청한 사람들이 그렇듯 남자는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헐떡이는 동안에는 잠자코 누워 있었다. 나의 아이는 불행히 살겠지만 스스로 불행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어쩌면 나를 죽이고 늙은 개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았다.
그리하여 총알은 배 한가운데 정확히 삼 부의 일 지점을 뚫고 나갔다. 늙은 개는 미지근한 내장을 몇 점 주워 먹고 부엌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6.
나의 총은 1980년에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글을 배우고 어느 날 문을 닫고 들어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오래도록 쓰고 있다. 나도 늙은 개도 죽지 않고 맞이하는 어느 아름다운 날의 일이었다.
- 유진목, 작가의 탄생 (민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