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말들
1
전자담배 한 갑을 사서 돌아오는 골목마다
엄마들의 초조한 표정이 딸의 귀가를 재촉하고
그 메마른 얼굴들이 엮어내는 사사로운 말들과
연신 담배를 빨며 지켜보던 풍경 속에는
발목마다 차오른 아스팔트의 냄새가 역력하고
밤기운은 무서운 속도로 어두워지기만 했다
이 도시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남아서
저마다 배반의 무게를 안고 현실이라 믿고
그토록 속아온 세월을 정 붙이며 저렇듯
힘겹게도 어린 딸들을 지켜내려는 이곳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 표정들만 서성대는데
아직도 제 부모를 찾지 못한 아이도 더러 남아
퀴퀴한 어느 골목에선가 울부짖고
마주 섰던 어른들의 날카로운 금속성 외침
날이 선 말들만이 번뜩이며 지내온 시절
나도 그 시절을 좇아 이 골목을 누볐던 기억
과거의 전력이 더더욱 죄스럽기만 한
말들의 유혹, 그 차디찬 환멸과의 동침
2
어린 내 방안에 가득 늙어가는 사랑은
이미 기침소리도 잦아진 고인의 그림자처럼
순간마다 철새처럼 부유하던 그 추억들도
부재한 흔적들만 남아 페이지마다 곱게 접힌
곱게 접어둔 책갈피를 하나둘 다시 펴보고
불청객처럼 요란하기만 한 전화벨 소리는
잊혀진 시간들을 더욱 더 더디게만 만든다
그 누가 있어 이 시간을 운명이라 부르든간에
펴진 책갈피만큼이나 혹 절실할 수만 있다면
그 말들을 어쩌면 지금이라도 믿어왔을 텐데
꼭 믿어오지 못한 세월을 탓하는 건 아니지만
3
옥상 꼭대기마다 견고했던 철탑들 모두
저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날개 잃은 새들처럼 처량한 울음이 되고
미처 눈 뜨지 못한 새벽을 애써 따라나서고
마침내 성자들 연기처럼 자욱이 승화하는 밤
그리하여 죽은 자들이 산 자의 그것을 얻고
또 얻어낸 걸 벗어던지고 다시 떠나간다면
그 짧았던 울음소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
가슴 속 빼내지 못한 못을 부여안고 산다
그 녹슨 멍자국 위에 추억의 재를 뿌리면
사람들 우러르게끔 속여온 하늘의 별들도
구겨진 가로등 밑 동심원으로 몸을 뉘고
젖은 동심원을 따라 주름진 얼굴들마다
제각각 촘촘히 박혀 있던 그 말들도 이제
하나둘 불을 끄면서 사라지고
어둠 속 낮은 목소리만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