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김용희, '<구인> 광명기업' (21세기의 노동시)

단정, 2025. 5. 10. 05:37

  

 

 

   <구인> 광명기업 

  

  

   외국인 친구를 사귀려면 여기로 와요 압둘, 쿤, 표씨투 친해지면 각자의 신에게 기도해줄 거예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글로벌 회사랍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이라지만 도는 멀고 생은 가까운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해요 매운맛 짠맛 단맛 모두 준비되어 있어요 성실한 태양 아래 정직한 땀을 흘려봐요 투자에 실패해 실성한 사람 하나쯤 알고 있지 않나요? 압둘, 땀 흘리고 먹는 점심은 맛있지? 압둘이 얘기합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입맛이 없어요 농담도 잘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봐요 쿤과 표씨투가 싱긋 웃습니다

   서서히

   표정을 잃게 되어도 주머니가
   빵 빵 해질 거예요 배부를 거예요

   소속이란 등껍질을 가져봐요 노동자란 명찰을 달아주고 하루의 휴일을 선물해 드릴게요 혼자 쌓고 혼자 무너뜨리는 계획에 지쳤나요 자꾸 삐걱대는 녹슨 곳이 발견되나요 이곳에서 기름칠을 하고 헐거운 곳을 조여보아요 감출 수 없는 등의 표정을 작업복으로 덮어 봐요 작업복을 입으면 얼룩이 대수롭지 않고 털썩 주저앉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툭툭 털고 일어나는 털털함을 배워보세요 먼지 풀 풀 날리는 공장이지만 한 뼘씩 자라는 미래를 그려봅시다 동그란 베어링을 만들다 보면 자꾸 가게 될 겁니다 긍정 쪽으로

   밝은 빛이 이곳에 있습니다 일종의 상징이지요 바람이지요 떠오르는 해를 보며 출근길에 몸을 실어보세요 터널을 좋아하나요 터널이 좋아지게 될 거예요 끝엔 항상 빛이 있다는 사실로
   어둠에 갇혔나요
   이곳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분류 : (중소기업) 제조업 - 선박 부품 제작
   임금 : 최저시급, 일 8시간(잔업 1시간), 격주 토요일 근무

   깔 깔 깔

   쿤이 땀 흘리며
   너트를 조이는 래칫 렌치를
   이곳 사람들은 깔깔이라 부릅니다

   웃음 많은
   이곳으로 와요

  

  

   # 김용희, 2025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21세기의 노동시 :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이 촉발되었던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과연 그 사조에 대한 온전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는가를 돌이켜 보면 전혀 그렇지도 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막심 고리키와 스탕달과 발자크와 엥겔스의 '문화예술론' 따위를 더 이상 들추어 보는 일도 적어진 건 비단 그 사조만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문제 또한 한몫 단단히 했음을 기억하곤 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더 이상 '노동문학'이라는 타이틀이 그 어떤 월계관도 훈장도 되지 못함을 이미 잘 알기에 제1회 이산문학상 수상작을 백무산 시인이 수상했다고, 박노해 시인의 역대 판매량이 최고라는 기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평가받지 못한 일들을 그다지 애석하게 생각하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최근의 시풍이 갖는 일련의 풍경들, 즉 '은유'와 '상징'이라는 매개물을 통한 정서의 획득 또는 '서사'와 '진술'의 힘이 갖는 공감대를 최대한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 따위 등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세상에서는 '서정시'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습니다. 다만, 

   최지인의 그것처럼 여전히 '서정시'의 폼을 유지한 채로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듯이 이른바 '노동시'라는 게 꼭 '르포' 중심의 아니면 '기자정신'에 투철한 문학일 필요는 없겠어서, 그 시대를 영위했던 일부 문예지들조차 몰락의 길을 걷는 요즘 같은 풍경에선 차라리 '무색무취'로 일관해버리는 창비 계열의 스탠스 또한 비난받을 일은 못 되어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란을 장식한 김용희의 데뷔작은 그런 면에서 볼 때에 과연 '노동시'라는 타이틀에 부합할까를 한참 고민해보기도 했는데, 일단 그렇게 이름을 붙인 세 심사자들의 평을 우선 읽어보도록 하죠. ;

   "삶 속에서 얻어지는 문장들과 상상화된 것을 통해 역으로 깊이 있게 현실을 성찰하는 시편들에서 ‘나’를 관찰하고 ‘나’를 정립하고자 하는 활달한 시적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중략) 당선작으로 선정된 ‘<구인> 광명기업’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직면한 노동의 문제를 밀도 높은 리얼리티의 사회적 지형도로 구현한 작품이다. 자신이 매일매일 현장에서 피부로 경험하는 노동의 현장을 무겁게 문제화하지 않고 가볍게 경량화해서 다룬다. 구인 공고 형식을 활용하여 현장 노동자의 입을 통해 한국인을 포함, 외국인이 함께 일하는 ‘광명’기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곳이 얼마나 유토피아 같은 곳인지 소개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반어적인지를 발랄한 문장 속에 녹여낸다. “소속이란 등껍질” “동그란 베어링을 만들다 보면” ‘땀’과 ‘웃음’의 병치 등의 위트 있는 겉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직면한 고통과 사회적 문제를 씁쓸하면서도 수가 높은 아이러니로 드러내고 있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여 어떻게 현장감과 공감력을 획득할 수 있는지 우리 시대의 진화된 노동시의 한 모습을 여실히 제시한 작품이다."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어떠신가요? 이쯤이면 '노동시'라는 타이틀에 부합할만한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말입니다. 비가 아직 그치지는 않은 모양새인데, 아침이 밝고 나면 이번 봄비도 차츰 잦아드리라 예상되는 일기예보를 읽습니다. 연체를 한 도서관도 다녀와야 하고, 연천까지 또 차를 몰고 다녀와야 할 촉박한 일정 탓에 서둘러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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