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앨범/필사

이병률, '이 넉넉한 쓸쓸함'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지 2017)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7. 9. 15:26

   
   
   
   이 넉넉한 쓸쓸함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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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 
   
   새벽녘에 나를 불러 세운 까닭이 무엇인지, 
   왜 간곡히 청한 편지에도 답신이 없었는지,  
   더는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으로 미루어 짐작하자 
   말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하면 또 그만일 법 
   
   그대로 그렇게 
   이대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