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앨범/필사

최백규, '이상기후'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 2022)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7. 9. 15:07

 
 
 
   이상기후 
 
 
   우리가 안고 있으면 낙서를 채색하는 것 가다 무릎 상처에 시퍼렇게 그늘이 자란다 
 
   캄캄한 욕실에서 더운물을 얹으면 붉은 꽃잎들이 흩어진다 등허리에 성호를 그으며 이것이 나의 해안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곳에서 너와 마주친다면 세상을 사랑해볼 수도 있겠다 싶다 
 
   무덥도록 조용한 실내에 머무르면 죽은 이후가 기억나서 
 
   수의를 벗듯이 잔기침을 식힌다 
 
   모기를 쫓거나 흐트러진 베개를 고쳐주던 휴일이 침대맡으로 쌓여드는데 
 
   숨소리로 구분할 줄 알면서도 자는지 속삭여보는 습관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만 든다 
 
   너를 지옥에서 온 안부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물을 마시려다 냉장고 문을 연 채 
   가만히 서 있다 
 
 
   * 최백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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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 
 
   다분히 '낭만적'이다... 어쩌면 그만한 '신파'일 수도 있겠다 
   '낭만적'이라는 말이 전적으로 능사인 것만은 아닌 까닭이다 
   그래도 눈길이 쏠린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