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필사의 나이테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4. 28. 04:13

  

  

  

   필사의 나이테 

 

       

    

   계단을 세워 제단을 덧대서 
   죽음과 죽음 이후의 기분을 꺼내고 
   가장 먼 곳에 차려질 식탁을 준비한다 
 
   이름을 부르는 쪽에 
   이름이 저무는 쪽에 
 
   긴 문장을 새긴 채 대답을 비워둔다 
   벗어나려고 찾은 입구와 
   굳어지기 싫어하는 발목 

     

   - 정영효, '도달할 미래'에서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문학동네 2023) 

 

 

 

   등단생활 15년 동안 시집 한 권인 시인의 시를 읽으면  

   습작생활 30년 내내 시집 한 권인 나 역시 과작이었고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슬픔과 죽음에 대해 한참 동안을 생각했으며  

   사랑과 헌신에 대해 한참 동안을 고민했으되  

  

   넘어진 자전거 뒤에 선 채로 물끄러미 본 하늘 

   영그는 잎사귀들과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보았어 

       

   그리움이 그리움이 아닐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고단함이 고단함이 아닐 수 있는 법을 찾았고 

        

   그리하여,    

   지혜를 갖추는 일은 도대체 얼마나 부질없으며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 또 얼마나 행복한가를   

   

   찾았어,

   찾고 있어서   

 

   또 다른 책을 읽고 지나쳐온 책들을 다시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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