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오늘의 시작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4. 2. 27. 18:11

 




   오늘의 시작



   매일이 똑같지 않아  

   어떤 날은 여섯 시가 밝고 어떤 날은 어둡고
   똑같은 열차 안도 누구는 앉고 누군 못 앉고

   요일마다 승객들도 달라 짝꿍이 바뀌곤 해  
   독실한 노인들만 몇 일정히 좌석을 차지해  

   이른 아침부터 어딜 향하는 걸까 종삼일까
   혹은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려 함일까

   매일마다 똑같은 건  
   손주는 늘 아프고 며느리 전화도 없고  

   없는 건 돈과 머리칼뿐이고  
   아침부터 고집도 저절로 주름이 깊고  

   그래도 제일 싸잖아, 너도 무료잖아
   오갈 데도 없는 이들의 가파른 쉼터
  
   온양온천을 돌고 또 병천순대 먹으면
   매일 한나절 루틴도 안성맞춤일 텐데
  
   난데없이 고함을 지르던 여성이 있고
   사람만 피해 다니는 학생들도 꼭 있어

   어지간해선 옴싹달싹도 못하는데  
   움직일 순 없는데 화는 왜 내는데

   열차는 태연하게 제 속도만을 낼 뿐  
   마치 어떤 날은 어떤 날도 같아 보여
  
   그래서 시 못 쓴다며 하소연을 해도
   그건 네 사정이지, 하며 받아친대도  

   실은 시마저 될 수 없는 일상은
   단 한 차례도 없었음을 알기에

   매일 매일이 전혀 똑같지 않아  
  
   더욱더 급해지는, 오늘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