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지극히 어둡고 먼 꿈만 같던 일들도
저렇듯 눈앞에 닥치면 그때 뿐인 걸
봄날은 간다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꽃은 피고
나뭇가지에 돋는 새싹은 하늘을 펴고
내 발걸음도 기지개를 편다
그렇게 봄날은 온다
때 이른 사랑은 쉽게 저물어 슬프고
간밤에 소주 두 병을 마셨다며 울던
친구의 바지도 주름을 편다
그렇게 봄날이 간다
오늘이 퇴직일인데 얼굴도 못 보던
고맙다는 인삿말 뿐인 사내 메일도
용량쿼터제 탓에 금세 지우고 만다
그렇게 계절은 흘러가고
가고 오는 게 익숙해진 늙음 탓에
또 오는 봄날을 간다며 읽는
무심함 진지함 넉넉함
그런 게 멋인 줄 알았다며
또 웃고 또 우는
그런 봄날도 있으련만
오고 가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걸
그렇게 눈앞에 닥쳐도 그때 뿐인 걸
여전히 어둡고 먼 꿈만 같던 일들
그런 봄날이 온다
그런 봄날이 간다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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