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뒤늦은 한파, 보름을 앞둔 입춘 :
너에게 쓴다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진 자리에 잎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 천양희,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작가정신, 1998)
대한을 거쳐온 새로운 한 주는 뒤늦게 한파가 불어닥칩니다. 눈앞의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머지 않은 입춘을 헤아려볼 마음도 필요한 때입니다.
천양희 시인은 여럿의 유명한 작품을 남겼지만 뭐니뭐니해도 교보문고 간판에 내걸었던 이 시가 가장 널리 알려진 편이어서 역시 뒤늦게 꺼내봅니다. 중견 이상 시인의 작품으로는 가장 늦게 소개하는 격이 됩니다.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을만큼 "벌써 길이 되었다"는 그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고 "풍화되었다"니 절로 아득해집니다. "풍화"가 아닌 "축적"이 될만한 밑천이라면 역시 그리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크고 많은 게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불어닥친 코끝의 삭풍도 또 그래도 꾸준히 땅밑을 밀어올리는 기운과 나뭇가지 끝에 걸린 움츠린 봉오리들도 모두 반가울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의 '파업'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주초가 될 전망입니다. 다들 건투하시길 바랍니다. 글쓰기에선 역시 '건필'이겠습니다.
(당분간 별다른 선곡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https://youtu.be/mDFAbU497Hw?si=QK-0tJOQ2GUqEi2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