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다시금 '고전'을 '고전주의'를 생각함 :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민음, 1974)
1998년의 창비 홈페이지는 "글이 있는 뜨락"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문지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역할을 그 공간이 맡았다고도 기억합니다. 예전의 습작 몇 편을 올려놓기도 했는데, 한 번은 '동지들 남긴 술잔엔'을 올려놓았더니 댓글로 '몽당연필'이라는 필명을 가진 어떤 회원이 선물로 건네주었던 시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던 계절을 시인은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며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한 줄기 위안이자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하였던 시편을 아침에 잠시 생각해봅니다.
기온이 제법 오르면서 새벽 날씨는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한낮에는 다시 영상의 온도를 회복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며 그동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단 1%의 희망을 건져내기 위해 99%의 절망을 견디기도 합니다. 삶의 형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보살피며 되도록 상대방한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바람직한 의미를 건네고 또 꾸준히 나누는 일들이 상책인 이유입니다. 친구도 애인도 동료나 부부도 자녀들도 가벼운 지인들도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며칠째 '고전주의'라는 아주 어려운 단어와 씨름하고 있던 중인 까닭에, 산타나의 낡은 연주곡을 한 번 올려놓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BlW8rblRbMw?si=aWyCg7MQFJuJwg8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