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얼터너티브"가 유행했던, 유행할 미래 :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민음, 2012)
벌써 12년이나 지난 옛 시집을 꺼낸 연유는 일종의 Contemporary 역할을 맡는 그조차도 가장 뛰어난 수작은 오히려 첫 시집의 이 시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고고한 풍경을 자아낸 정서는 일체의 의미도 담지 않을 진술로 '메시지즘'을 배격하고 '이미지즘'만을 지향한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냈고,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문청들의 롤모델 역할을 맡게 된 그가 처음 펼친 이 세계는 지난 십수 년을 거치면서 이제 대한민국 시단의 최대 '주류'가 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앞을 다투며 구관조를 씻기듯 황인찬을 베끼기에 열중해온 지난 시절을 일컬어 한 평론가는 "시름시름 앓다가 관 속으로 들어간 대한민국 시에 아예 못까지 박아버린 시대"라고까지 일갈했는데, 아마도 '독자'라는 기준 때문이 아니었을까로도 짐작해봅니다. 바야흐로 등단시인의 데뷔시집이 1쇄도 못 넘기며 고작 500부, 또는 1천 부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150만 부도 넘게 팔았다던 원태연 시인이 비웃고도 남을 일이겠지만요.)
1990년대 팝의 역사를 계보학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뭐니뭐니해도 "얼터너티브"의 출현을 빼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단순한 리프와 직설적인 가사로 거친 저항을 표현하는 게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했던 것이라면, 아마도 지난 시기의 '미래파' 열풍 역시 교묘해진 자본주의 사회의 허전한 아픔들과 우스꽝스레 몰락해버린 '전망'을 고스란히 대변할 "히키코모리" 신드롬, 굳이 시로 표현한다면 "자기 혼자 주절거림"이라는 매우 희한한 상태와도 결국 맞닿습니다.
"얼터너티브"는 고착화된 개념이 아니기에, 20세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얼터너티브"가 여전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중세시대의 "르네상스"가 21세기로 호출되었으며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하고 절망적인 실험이었던 "레볼루션" 역시 그렇습니다. 이게 곧 김연수 작가가 말한 "기억해야 하는 미래"일 수도 있겠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4R7F4-voDIg?si=nX8nWx_cak_4qH7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