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박준, '숲' (바다가 있던 숲의 기억, 12월 마지막 주)

단테, 정독 2023. 12. 26. 04:42

 

 

 

[베껴쓰고 다시읽기] 바다가 있던 숲의 기억, 12월 마지막 주 : 

 

 

   숲 

 

 

   오늘은 지고 없는 찔레에 대해 쓰는 것보다 멀리 있는 그 숲에 대해 쓰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고요 대신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고 있다는 그 숲 말입니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머지 않아 겨울이 오면 그 숲에 '아침의 병듦이 낯설지 않다' '아이들은 손이 자주 베인다'라는 말도 도착할 것입니다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그러다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오고 '밥'이나 '우리'나 '엄마' 같은 몇 개의 다정한 말들이 숲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먼 발길에 볕과 몇 개의 바람이 섞여 들었을 것이나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지, 2018) 

 

  

   숲이 있었습니다. 

   박준의 두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온지도 벌써 다섯 해가 흘렀습니다. 그의 산문보다는 그의 안부와 새 시집이 더 궁금해지는 세밑입니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새롭게 단장한 인천터미널을 찾았고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한 시간 가량 서성이다가 샀던 시집인데 문학동네의 첫 시집보다는 제본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아직까지는 너덜거리지 않음이 반가울 뿐입니다. (첫 시집은 그렇다는 얘기죠.) 

   바다를 듣던 겨울도 있었습니다. 

   12월의 마지막 한주가 시작됩니다. 며칠 가량의 근무일을 제외하면 공동연차 등으로 연말까지 쭈욱 연휴가 예정돼있기도 하고요. 참고로 제 회사에서는 오늘 팀장 인선의 발표 가능성도 꽤 높아 출근하자마자 다들 입소문에 일희일비할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군요. 공중파에서는 연일 가요, 드라마, 연예 등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들이 열릴 테며 뉴스 헤드라인에 차고 넘칠지도 모르겠군요. 신춘문예 소식은 정초에나 들릴 법하니, 그동안 미뤄둔 글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볼 시간을 갖거나 내년을 구상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쌀쌀하고 기운도 차가운 편인데, 그래도 언제쯤엔가 이성부 시인의 '봄'을 다시 읊조릴만한 날씨도 곧 찾아오리라 기대합니다. (수도권의 현재 기온은 영하 4도, 낮 최고 기온은 7도라는군요... 어떤 분한테는 쌀쌀한 날씨가 또 어떤 분한테는 포근한 쪽으로도 느껴질 법합니다.) 

   숲이 있었고 그 옆엔 바다가 있습니다.  

   비록 '메이저 등단'에 해당되진 않더라도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은 넘쳐납니다. 각 동인지마다 신인을 모집하는 공고들이 나올만한 시즌이며, '등단'보다는 '지면'이 급한 분들께서도 내년초에 곧 있을 주요 문예지 공모소식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요. 또는 아예 저처럼 새로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4시 정각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또 다시 삼십 분이 더 지났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Yojc0SOZNr4?si=aYGz0-vorJuKNI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