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신춘문예 D-21]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산책

단테, 정독 2023. 11. 9. 05:22

   
  
  
[신춘문예 D-21]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산책 : 

 

 

새벽 공기가 차갑습니다. 동편 하늘에는 그믐달도 떴습니다. 

이제 신춘문예도 불과 3주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네요... 아직도 퇴고를 하느라 힘겹고 밤잠을 설치기 일쑤인데, 여전히 작품은 여간해선 눈뜨고 보기 힘들 경우들이 더 많습니다. 어쩌겠나요? 여기까지가 또 '한계'일 뿐입니다. ^^ 

11월의 두번째 주말을 맞기 직전인 목요일, 작심을 하고 이제니 시인을 또 꺼내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을 텐데, 아마도 올해 신춘문예를 도전하는 분들 중 대다수는 박준, 이제니, 황인찬의 그늘 아래서 또 더러는 강성은, 나희덕, 김행숙, 오은, 김언 그리고 김경주와 조연호와 양안다까지 정도를 닮아간 채로 이 '구도'의 길을 걸으셨으리라 짐작해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벗어난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여야만 비로소 '당선'의 가능성이 열리게 됨도 충분히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모두들 건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우리가 언어로 말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지금 우리가 언어로 말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빛을 통해 낯선 것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미래에도 보이는 세상입니다. 익숙한 것들이 놓여 있는 방이 나옵니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보다 더 큰 것을 남겼던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다.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들어간 곳에서 나온 사람이다. 들어갔는가를 알기 위해 다시 나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가. 많은 것들에 뒤덮여 살아왔다.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수많은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두 개의 방이 있는 구조이다. 공간과 공간 사이의 빛 속에서 흩날리는 먼지 같은 것들에 대해 쓰고 있다. 눈을 감은 채로 회랑과 복도를 더듬고 있다.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미래의 방은 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후의 구조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무척 어지러운 그림자의 그물이다. 흘러가는 비행운을 통해 구름의 과거를 본다. 하얀 눈 위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리며 누군가의 미래를 점칠 수도 있다. 옛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옛날로 거슬러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적인 무대가 있다. 그것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어두운 생각뿐이다.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이 문장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분명 태양은 흑점을 품고 있다. 꾸며낸 이야기가 가본 적 없는 거리의 풍경을 불러들인다. 한곳으로 모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다. 구름에서 태양을 향한 항해는 지속될 것이다. 이 모든 목소리를 듣는 입장이라면 너는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문장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미래 또한 가지고 있었다. 구석진 사각의 방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소음을 듣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꾸미지 않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오래된 목소리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배열이 필요하다. 그는 덧붙이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낱말 연습을 하고 난 뒤에는 기억의 기록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막힌 부분을 골라냅니다. 나날이 새로워질 사건과 물건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습니다. 새로운 세기에 살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너를 한 문장 이전으로 옮겨둔다. 정확히 나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냉담한 목소리가 흘러들어도 너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구형이고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낱말 상자에서 낱말 종이를 꺼낸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청색 갈색 문장을 수집한다. 연극은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제 우리는 주변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건들 속에서도 대팻밥과 나무 먼지 사이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낱말과 문장 사이에서도. 소수의 의견으로 선택된 산책로와 선언문 사이에서도. 이제 드디어 준비가 끝난 것이다. 모두 모여들 수 있도록 나아갈 때 흰색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끝날 때까지 음지의 양치식물을 기르기로 한다. 그것을 제대로 보고 싶지만 다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할 바꾸기 놀이를 합니다. 함축을 위한 문장을 버렸을 때 다시 들려옵니다. 그것은 미래의 방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당신은 이 세계에 대해 당신의 문장으로 무엇을 왜곡시켰습니까. 너는 순간의 풍경을 순간의 그림으로 남겼다. 순간의 그림은 그림자 저편에서 흐르고 있다. 네가 느꼈던 순간의 느낌을 네가 느꼈던 순간의 느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언어로 말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빛을 통해 낯선 것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쓴 것들 (문학과지성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