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D-30] "운칠기삼"과 0.03%라는 가능성 :
"운칠기삼".
흔히들 자주 듣게 된 이 사자성어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이는 구글 (현 알파벳)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구글의 성공신화와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대뜸 자신있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또 앞으로도 줄줄이 대학입시와 신춘문예 소식들로 매우 붐빌 예정이고, 달력은 비로소 시월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아침입니다. 며칠전부터 계속 Barry Manilow의 'When October Goes'를 듣는 편인데, 이는 주로 가장 덜 팔린다는 Jazz Ballad라는 장르에 속하는 노래입니다.
합격과 탈락, 당선과 낙방의 희비는 항상 크게 엇갈리곤 합니다만, 그저 한 순간들일 뿐이며 '목표'를 향하는 과정의 지나침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벅찬 소식을 알려온 이들한텐 진심의 축하와 힘찬 격려의 박수를 잊지 않고, 또 맥빠진 안부로 답하는 이들한텐 역시 진심어린 위로와 따스한 포옹으로 마음을 전합니다. 다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며, 운이 나빴을 뿐이기에 크게는 마음에 담아두려 하지 않아도 좋을 일입니다.
이제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올해 신춘문예입니다.
역대 주요 통계들을 보면, 대개는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왔고 제출해야 하는 분량도 감안한다면 얼추 3천 내지는 5천 대 1 정도의 경쟁을 뚫고 한 해의 당선작을 뽑는 자리입니다. 즉, 내 작품이 신춘문예에서 탈락하게 될 확률은? 자그마치 99.97%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ㅎㅎㅎ 반대로 그 기쁨의 자리를 얻을 확률은 고작 0.03%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겠죠...
그렇다면, 포기해야 할까요?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당선'의 가능성과는 전혀 무관한 자리라고 보는 편입니다. (어쩌면 그 '당선'의 가능성과 향후의 지면을 확보하는 문제 등을 따져본다면 오히려 각종 문예지들을 먼저 떠올리고 도전하는 게 더 현명할 일입니다.) 즉, 신춘문예는 단지 0.03%의 희박한 가능성만을 기대하는 무모함 뿐만이 아니라 한 해의 창작활동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전국적 이벤트이며 그 한 해의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은 이한테도 '당선'이라는 참으로 기쁜 선물을 함께 수여하는 모두의 축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글쓰기는 어차피 평생의 과업이며, 신춘문예는 한 해 한 해마다를 장식하는 그 '과정'들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가급적 많은 분들이 함께 도전하고, 함께 축하하는 멋진 한 해로 마무리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작품은 비록 '당선'조차 못하고 초라히 등단했지만 결국 창대한 결실과 성과로 기록된 황지우 시인의 데뷔작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작'이 아닌, '가작'으로 겨우 입선을 했던) 그 '연혁'이라는 시입니다. ;
연혁
- 황지우
섣달 스무 아흐레 어머니는 시루떡을 던져 앞바다의 흩어진 물결들을 달래었습니다. 이튿날내내 청태(靑苔)밭 가득히 찬비가 몰려왔습니다. 저희는 우기(雨期)의 처마 밑을 바라볼 뿐 가난은 저희의 어떤 관례와도 같았습니다. 만조(滿潮)를 이룬 저의 가슴이 무장무장 숨가빠하면서 무명옷이 젖은 저희 일가(一家)의 심한 살냄새를 맡았습니다. 빠른 물살들이 토방문(土房門)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저희는 낮은 연안(沿岸)에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근경(近景)에서 이름 없이 섬들이 멀어지고 늦게 떠난 목선(木船)들이 그 사이에 오락가락했습니다. 저는 바다로 가는 대신 뒤안 장독의 작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빈 항아리마다 저의 아버님이 떠나신 솔섬 새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물 건너 어느 계곡이 깊어가는지 차라리 귀를 막으면 남만(南灣)의 멀어져가는 섬들이 세차게 울고울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붙들었고 내지(內地)에는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럴수록 근시(近視)의 겨울 바다는 눈부신 저의 눈시울에서 여위어갔습니다. 아버님이 끌려가신 날도 나루터 물결이 저렇듯 잠잠했습니다. 물가에 서면 가끔 지친 물새떼가 저의 어지러운 무릎까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느 외딴 물나라에서 흘러들어온 흰 상여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꽃 속이너무나 환하여 저는 빨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언뜻언뜻 어머니가 잠든 태몽(胎夢)중에 아버님이 드나드시는 것이 보였고 저는 석화(石花)밭을 넘어가 인광(燐光)의 밤바다에 몰래 그물을 넣었습니다. 아버님을 태운 상여꽃이 끝없이 끝없이 새벽물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삭망(朔望)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러나 바람 속은 저의 사후(死後)처럼 더 이상 바람 소리가 나지 않고 목선(木船)들이 빈 채로 돌아왔습니다. 해초 냄새를 피하여 새들이 저의 무릎에서 뭍으로 날아갔습니다. 물가 사람들은 머리띠의 흰 천을 따라 내지(內地)로 가고 여인들은 환생(還生)을 위해
저 우기(雨期)의 청태(靑苔)밭 넘어 재배삼배(再拜三拜) 흰떡을 던졌습니다. 저는 괴로워하는 바다의 내심(內心)으로 내려가
땅에 붙어 괴로워하는 모든 물풀들을 뜯어 올렸습니다.
내륙(內陸)에 어느 나라가 망하고 그 대신 자욱한 앞바다에 때아닌 배추꽃들이 떠올랐습니다.
먼 훗날 제가 그물을 내린 자궁(子宮)에서 인광(燐光)의 항아리를 건져올 사람은 누구일까요.
*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