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신춘문예 D-31] '독자'라는 존재에 관하여... 단 한 명을 위한 창간호의 추억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3. 10. 30. 04:14

   

  

  

[신춘문예 D-31] '독자'라는 존재에 관하여... 단 한 명을 위한 창간호의 추억 : 

 

 

수도권 새벽 기온이 섭씨 8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예요. 

간밤에 블로그를 좀 정리하느라 노트북이 현재 100시간 가까이를 쉬지도 못한 채 달리는 중입니다. 가장 화려할 법한 신인들의 무대인 신춘문예를 손꼽아 기다릴만한 이들은 누굴까를 잠시 생각해보니, 정작 당락의 운명을 손에 쥔 심사진도 아니고 이미 연말께에 이르면 연락이 있고 없음으로 해 스스로 결과를 짐작하게 될 응모자들이 아니겠고... 바로 독자들입니다.

계간 <창작과비평>이 창간호를 낸 게 벌써 아득한 추억이 된 시대입니다. 그 첫 호를 펴낸 이가 창간사에서 밝혔던 문구가 문득 생각납니다. "그 출발이야 누가 하든지 막막한 느낌이 앞서기 쉬울 것이다. 먼 길을 어찌 다 가며 도중의 괴로움을 나눠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직 뜻있는 이를 불러 모으고 새로운 재능을 찾음으로써 견딜 수 있을 것이요, 견디는 가운데 기약된 땅에 다가서리라 믿는다."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 중에서)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글을 씁니다. 그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백만 명의 독자가 되는 것이지 단 한 명의 독자를 버리게 되면 단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가, 모든 시인들은 그저 단 한 명의 독자가 자신의 전부가 되는 셈입니다. 

질문을 스스로한테 던져볼 차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독자들이 가장 읽고 싶어할만한 시는 무엇일까? 또 어떤 소설을 기다리고 있을까? 내지는 어떤 이론적 잣대로 작품을 비평하는 문체를 보고싶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한테 던져봄으로써 정작 써야 할 글에 대한 마음가짐과 오롯한 태도를 견지해갈 수 있겠다고도 생각합니다. ;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이제는 송곳보다 송곳에 찔린 허벅지에 대하여 

말라붙은 눈꺼풀과 문드러진 입술에 대하여 

정든 유곽의 맑은 아침과 식은 아랫목에 대하여 

이제는, 정든 유곽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한 발자국을 

위하여 질퍽이는 눈길과 하품하는 굴뚝과 구정물에 흐르는 

종소리를 위하여 더럽혀진 처녀들과 비명에 간 사내들의 

썩어가는 팔과 꾸들꾸들한 눈동자를 위하여 이제는 

누이들과 처제들의 꿈꾸는, 물 같은 목소리에 취하여 

버려진 조개 껍질의 보라색 무늬와 길바닥에 쓰러진 

까치의 암록색 꼬리에 취하여 노래하리라 정든 유곽 

어느 잔칫집 어느 상갓집에도 찾아다니며 피어나고 

떨어지는 것들의 낮은 신음 소리에 맞추어 녹은 것 

구부러진 것 얼어붙은 것 갈라터진 것 나가떨어진 것들 

옆에서 한 번, 한 번만 보고 싶음과 만지고 싶음과 살 부비고 싶음에 

관하여 한 번, 한 번만 부여안고 휘이 돌고 싶음에 관하여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지,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