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김행숙,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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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의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조용미의 "당신의 아름다움",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신해욱의 "무족영원"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하면서도 인유의 시적 가능성을 한껏 밀고 나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등단을 해 올해로 만 53세, 데뷔 24년차가 된 김행숙 시인은 이미 굵직굵직한 공모전과 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여럿 이름을 올렸던 적이 있어 제법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 시집 역시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을 했는데, 이는 문지에서만 네번째이기도 합니다. 데뷔 후 이듬해인 2000년에 이미 '대산창작기금'을 수상한 바 있었는데, 딱 20년만에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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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따라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김행숙,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문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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