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강성은, L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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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Lo-fi』(문학과지성사刊), 강성은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심에서는 1, 2차 심사를 통해 강성은의 『Lo-fi』, 김정환의 『개인의 거울』, 이영광의 『끝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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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심에서는 1, 2차 심사를 통해 강성은의 "Lo-fi", 김정환의 "개인의 거울", 이영광의 "끝없는 사람", 허만하의 "언어 이전의 별빛"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낸 "Lo-fi"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2005년에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강성은 시인은 창비와 문지에서 각각 시집을 출간한 이후, 세번째 시집으로 데뷔 13년차만에 무려 대산문학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현재 시와 소설을 함께 쓰고 있는 작가죠.) 몇몇의 시인론에서도 자주 언급돼온 '환상 속 세계'가 갖는 서사들은 기이하고 끔찍하지만 낯선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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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광장
검고 푸른 밤이었다 길을 걷다 광장에 이르렀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광장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광장은 넓고 고요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광장의 침묵 속에 한참 서 있다가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샛길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과 처마를 지나 불 켜진 창을 지나 교회와 상점들을 지나자 또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바닥에는 버려진 깃발과 전단지들이 굴러다녔다 진흙과 피의 냄새가 공기 중에 스며 있었고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 울음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울음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에 나는 급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길은 이어져 있었고 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불 꺼진 시장을 통과해 학교와 약국과 정류장을 지났는데 내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좁은 골목들과 창문들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 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 시체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과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는 내가 누워 있었다 나는 나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는 뜨거웠고 내 손은 차가웠다 죽어 있는 것은 나였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게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그랬다
# 강성은, "Lo-fi" (문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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