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https://www.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67&view=history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심에서는 1, 2차 심사를 통해 나희덕의 "파일명 서정시", 송재학의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오은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경림의 "급! 고독"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언어 탐구와 말놀이를 통해 사람의 삶에 대한 진정성있는 성찰을 이끌어내고 사람의 내면을 다각도로 이야기하면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언어탐구로써 표현하는 참신한 시세계를 형성한 "나는 이름이 있었다"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큐레이터들이 출간을 결정하는 시스템, 독립출판사 '아침달'에서 엄청난 기록을 탄생시켰습니다. 첫 메이저 수상이라는 대기록과도 무관하게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들이 기존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고 어떻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에 관한 가능성 등을 크게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해의 수상기록은 가히 기념비적입니다. (물론 오은 시인은 이미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현대문학을 통해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던 출중한 베테랑이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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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하는 사람
이야기가 필요해
사람이 있고 집이 있고
집에는 책이 있고
식탁 위에는
꽃병도 있는 이야기
정작 꽃병에 물이 없었다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지
숨기고 싶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
집 안에도, 책 속에도
식탁 위에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꽃은 시들고 있었다
암만 씻어도
아무리 청소해도
제아무리 들여다봐도
표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야기를 떠올리다
꽃병에 물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꽃에 물을 주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
오고가야
나누는 것이 되고
담론이 되어 밤을 밝히고
항간에 떠돌며 손상되기도 하다가
이야기의 끝에서 기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
밥때가 되면
식탁 위에서 다시 외로워지는 이야기
운때가 맞지 않아
집 안에서 자취를 감추는 이야기
침묵하는 꽃을 핑계 삼아
또다시
이야기는 장황해지고
이야기는 쓸데없어지고
이야기는 황당무계해지고
이야기는 거짓말 같아지고
꽃병에 물을 채우다
이야기를 꺼낸 사실을 잊고 말았다
사람이 있고 집이 있고
집에는 책이 있고
꽃병에 물만 채우면
소문처럼 부풀어 오를 줄 알았던
이야기가
말문 밖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궁리하지 않으면
말하기 전에 벌써 곤궁해졌다
#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아침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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