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 앞에서
김명인 시집을 읽다
죄 노른자 투성이인 시들 속에
내가 찾던 비애는 함께 삶아져
저리도 노릇노릇하게 변색한다
먹다 남은 빵이라도 구워낸 걸까
아니면 혹 밤새 내리던 비처럼
축축이 젖었기만 한 냄새였나
친구들 오간 흔적, 우유갑만 남아
사흘째 방안을 내내 뒹군다
한때나마 시를 쓰려고 했었지
그런 식으로 파묻혀보고도 싶었어
비에 젖은 창문, 긴 골목이 흐르고
자동차들도 서서히 길가에 멈춘다
남몰래 읽던 옛 시집의 냄새처럼
그것들 역시 초조한 기색이다
어제까지도 날은 말짱했는데
가끔은 아침마다 병든 새, 울었다
새들도 젖은 깃털을 다 털었는지
이제 아무도 제 자리엔 없구나
마치 전자오락실마다 꽈당 부딪쳐
막다른 길로 접어든 오토바이처럼
비틀비틀 몸을 추스르고 또
눈앞에 우뚝 선 타이어를 피해야지
늘 그런데 왜 가끔은 지쳐야 하는지
또 그렇게 하품을 하며 일어섰었나
물 끓는 소리가 곧 멈추었고 이제
밥 짓는 냄새가 방 안으로 스민다
향기로운 일상의 마취, 때문에
달걀부침은 끝내 먹지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