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봄의 안부, 온다고 함)

단정, 2025. 4. 2. 06:19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곰나루 : 충남 공주에 있던 나루. 동학 농민군이 최초로 봉기한 곳 
   * 초례청 : 전통 혼례인 초례를 치르던 장소 
 
 
   * 신동엽, 52인 시집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신구문화사 1967) 
 
 
 
   ... 
 
 
  
   봄의 안부, 온다고 함 : 
 
 
   신동엽 시인의 대표작 발표를 놓고 그의 전집을 출간한 창비에서도 1967년의 신구문화사가 펴낸 <52인 시집>으로 기재해놓고 있는데, 월간중앙에서 탐사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시는 이미 3년 앞서서 한 동인지인 <시단> 제6호 (청운출판사, 1964)에 실린 게 맞다는 주장이 나왔었습니다. (10년 전의 기사인데 지금은 어떻게들 보는가도 좀 궁금합니다.) 
   어제 현직 대통령의 탄핵심판 일정 소식이 나오자마자 한 친구가 대뜸 "껍데기는 가라"는 메시지를 남겨 이 시가 대뜸 떠올랐습니다. 시에서 밝혀둔 "알맹이"는 과연 무얼까를 잠시 생각해본 시간도 있었나 봅니다. 어쩌면 그 "알맹이"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있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 또는 '사랑'이라는 의미로도 작동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느냐가 곧 이 시대의 '시민'이 가져야 할 책무 중 하나일 테며, 오로지 온전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만이 어 거칠고도 험난한 세월을 지탱해갈 버팀목을 얻게 마련인 법이니까요. (그저 욕망만을 쫓는 연애 뿐인 행위를 더 이상 '사랑'이라고 참칭하며 부르진 말아야 하겠지만요.)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무얼까를 또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며칠 전에 누구한테 들었던 말인데 우리나라 음식들이 워낙 다양하고 조리방식도 출중해 외국 사람들이 많이들 놀란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헐벗고 굶주렸으면 저걸 다 먹을 생각까지 했겠나' 하는 애잔한 마음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절실함이 만든 "아우성"은 그래서 결코 가벼이 읽히지가 않는 모양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 역시 엇비슷한 기조로 설파해놓은 바가 있는데, 어쩌면 비이성이 이성마저 지배해버린 듯한 작금의 시대를 살면서 오히려 그 어떤 '추악한 진실'보다는 차라리 '정의로운 믿음'을 더 원한다는 생각도 가끔 해봅니다. 유발 하라리의 인류사에서처럼 도저히 그 '희망'을 발견하기도 힘든 존재가 인간이라면 과연 인간에 대한 '존중'은 무얼 갖고 해야 하나를 고민해보기 시작할 무렵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이제 불과 50여 시간이 지나면 이 질식할 것만 같은 시절도 끝나게 마련인 법이고, 어김없이 봄은 찾아올 테며 또 그리운 사람들도 가끔은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겠죠... 그런 짤막하고도 사소한 기쁨들을 '행복'이라고 믿으며 또 어렵게 이 외로운 시절들을 버티고 또 멀쩡히 지내보려는 모습이 비단 특정한 한 사람 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거나 엇비슷한 심경들은 아닐까 해 아침부터 조금은 가볍게 위로의 첫마디를 먼저 내놓게 됩니다. 
   아무튼 봄이 온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