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단테, 정독 2024. 4. 23. 04:52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그랬다 
 
   - 강성은, '밤의 광장'에서 (Lo-fi, 문지 2018)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래성을 쌓는 소녀를 불러내고 
   소녀로 하여금 하얀 모래성을 쌓게 만들고  
   비바람에 모래가 씻겨 설령 소녀가 울어도 
   등을 토닥이면서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면 
    
   때때금 잔혹한 상처들은 모래성만도 못해 
   노래가 사라진 광장에는 햇볕만 가득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공기 속 맑은 한 점 구름 
   유일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 이 낙타 
   다시 낙타의 볼을 쓰다듬고 함께 대화하면 
 
   너 왜 자꾸 반말이야? 
   미안해 
   하지 마 
   알았어 
   또 하네? 
   ㅎㅎㅎ 
   사랑해 
   웃기네 
   ㅎㅎㅎ 
   사랑해요 
   그만해 ㅋ
   ...... 
    
   귓가에 바람이 불고 다시 노래를 꺼낸다면 
   훗날의 광장은 노래를 대신한 배경이 되고 
   배경은 영원할 테며 오가는 이들만 사라져 
   누군가는 사랑이 되고 그리움이 될 테지만 
   별빛처럼 속살대면서 아름다울 수 있겠지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래성을 쌓는 소년을 또 부르고 
   소년으로 하여금 하얀 모래성을 또 쌓으면 
   비바람에 모래가 씻겨 설령 소년이 울어도 
   다시 낙타와 함께 달빛 속으로 걸어간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