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진은영, '청혼' 중에 (계간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
빈 잔 위로 한꺼풀의 시간이 쏟아지면
이윽고 반성의 향기가 함께 스며들곤 해
그윽해진 사연들을 단숨에 훌쩍 비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망각의 병을 찾고
그렇게 잊힌 시간들 틈에서 때때로 우린
스스로 고독해지는 법을 배웠을까 몰라
여전히 햇빛은 찬란하고 어깨는 가볍고
비가 그친 종로에서 물끄러미 본 그림자
사람이 사람을 배워간다는 일
사람이 사랑을 배워간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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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