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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부질없음에 관하여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4. 15. 06:07

 
 
 
   욕망, 부질없음에 관하여
     
   
 

      모처럼 단잠에 빠졌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다
      
      어제나 오늘로 충분한 게 아니고
      내일이 과분해서
  
      그런데 사랑은 해야겠지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돈과 노동과 사랑 앞에서
      정직한가 돈과 노동과 사랑은
   
      만져지지 않는 부위가 만져지기를 바라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
    
      - 고선경,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중에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 

     
   
   
   스스럼없이 바란다는 게 부질없음은  
   그걸 제대로 상실해 본 다음에 느낄 법 
 
   오늘도 마리는 산책을 가자 조르지만 
   매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몰라도  
  

   열심히 자주 산책을 시켰으면 좋겠어 
   적어도 남한테 피해를 주진 않으니까

 
   세상 일들이 맘처럼 그리 편하지 않아 
 
   눈치도 살펴야 하고 때때금 양보도 해 
   보잘것없는 전철 자리 한 군데도 그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안부를 듣고
   일 년 만에 전화를 걸어 노래를 들었고
   통화는 못해도 상관없어 걱정해 주었어

   겹벚꽃이 시들어 물가로 흐르고 나면
   물 흐른 자국마다 사랑을 느끼고는 해

   어떤 이는 '해야만 한다'는 사랑이
   내게는 단 한 번 그런 적이 없었고  

   단 한 번 욕망해 본 적 없이
    
   그저 귓불을 스치는 바람 따스한 공기
   투명했던 미소 넘어진 자전거를 기억해

   길이 또 흐려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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