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사소한 리얼리티와 ‘일상성’ (원동우, 이사) :
이사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석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밭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이제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면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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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포스트모던’이 먼저 있었고, 사회주의의 몰락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이 거대한 사조가 최초로 위기를 겪은 건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였겠죠.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그토록 거셌습니다.)
홀연히 나타난 한 신인은 국민은행 직원이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로부터 쉬이 들었을 법한 이 드라마도 어쩌면 ‘자전’이었거나 또는 ‘업무’였을 것 같습니다.
전혀 ‘포스트모던’하지 않았던 시인도 변변한 시집 몇 권 없이 벌써 환갑 가까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1993년 신춘문예 당선작품집을 읽다가 유일하게 깊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작품은 ‘일상성’이 곧 시가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일깨웁니다.
(나머지 말들은 저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한 이승하 시인의 글로 대신합니다.) ;
https://m.blog.naver.com/sidong6832/2209035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