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
- 날개 달린 것들
여름과 매미
평범한 짝꿍
이제 짐짓 아는 체하는 일에 지쳤어
여름이고 다 자라버려서 매미가 울고 있을 뿐인데
거기서 비의와 교의를 찾는 일 따위
매미가 우는 일에
매미처럼 울지도 못할 거면서
통곡은 몸에서 멀고
늦은 오후, 흑색 도시는 매연으로 부풀어
사람의 마음에 기관지를 달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게 있다는 걸
틀어막아야 할 검은 입가가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대충 눈을 감고 팔짱을 낀다
길인지 굴인지 모를 갱도의 각도로
자신을 접는 방식으로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퇴근을 하고
너는 높은 곳으로 갔다
나약하고 조악한 사람
우리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손에 쥐여 줄 지폐와 동전을 가지고 다녔을 텐데
잡동사니 하나 없는 호주머니가 미래적인 것이라면
더 먼 미래에 갑자기 떠나가는 사람에게
황급히 무엇을 꺼내야 하나
주머니 대신 주머니가 되는
그런 게 미래의 아름다움이라면
아아, 이제 그만할래
골목에서 비스듬히 돌담에 기대
네게 하고 싶은 말,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데
하필이면 발밑으로 매미가 죽어 있다
새카맣게
날개를 접으면
양문으로 닫힌 관이 된다는 걸
여름의 모든 바닥,
네가 높이 갔으므로
이 말은 너에게 하지 않기로 한다
# 최현우,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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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한 말들 :
창비시선 517호로 나온 최현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어쩌면 '하지 못한 말들'에 관한 서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989년 생으로 등단 12년 차가 된 그도 이제 벌써 삼십 대 중반을 훌쩍 넘어섭니다.)
여름 한철을 내내 울던 매미의 소리는 그한테서 이제 '비의'나 '교의' 같은 종교성마저 상실한 듯합니다. "매미처럼 울지도 못할 거면서" 시인은 오히려 "틀어막아야 할 검은 입가"와 "하고 싶은 말"에 더 주목합니다만, "하필이면 발밑으로 매미가 죽어" 있고, 시인은 "이 말은 너에게 하지 않기로 한다"며 얼버무립니다. 아이러니 같은 현실과 강제된 침묵 앞에서 조곤조곤 심경을 털어놓는 편입니다.
하물며 시인이 털어놓지도 못한 무수한 말들을 일반인들이 스스럼없이 내뱉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취임한 지 열흘밖에 안 된 신임 대통령과 정부를 둘러싼 잡음들도 그렇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끼리 허물을 들추며 언쟁을 벌이는 광경도 심심찮게 보이곤 합니다. '분노조절장애의 사회'.
하지 못한 말들 앞에서 시인처럼 머뭇대기만 하는 모습도 꽤 답답할 테지만, 가감 없이 모든 걸 죄다 드러낸 풍경들도 가히 아름답다고까진 얘기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산문의 시대'를 살아가는 비애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익숙한 '서정'의 형태로써 살육과 공포의 21세기를 가까스로 살아내고 있는 한 시인이 있습니다. '신파'에 빠지지 않는 '침착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일진대, 일상에서도 이 법칙이 통용될 수 있을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필 이 시가 발표된 달에는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여름의 시 한 편을 놓고 비통한 심경을 에둘러 전하던 육호수 시인의 말투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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