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 편지 1
푸른 악기처럼 내 마음 울어도
너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암울한 침묵이 반짝이는 강변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루종일
정결법 논쟁으로 술잔을 비우고
너에게로 가는 막배를 놓쳐버린 나는
푸른 풀밭,
마지막 낙조에 눈부시게 빛나는
너의 이름과 비구상의 시간 위에
쓰라린 마음 각을 떠 널다가
두 눈 가득 고이는 눈물
떠나가는 강물에 섞어 보냈다
# 고정희, 지리산의 봄 (문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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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한글, 오월 :
내일이 스승의 날입니다.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지도 이제 꼭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 가지 의미를 덧붙이자면,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한겨레신문>이 창간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된 첫 '민주언론'의 탄생을 알린 그날의 가슴 벅찬 창간사는 송건호 선생께서 직접 쓴 걸로 압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이 낳은 값진 성과였기도 하며, 이듬해부턴 다시 <창비>와 <문지>가 복간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되새겨볼 만한 날입니다.
고정희 시인을 꺼내듭니다. 지리산을 노래했던, 지리산에서 죽었던 시인이자 가정법률상담소 출판국장이요 여성신문 편집주간이기도 했던 그가 어쩌면 이 나라 '페미니즘' 운동의 시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거대 패러다임이 모두 붕괴된 지금을 일컫는 미소한 담론들 중에선 제법 덩치가 큰 셈인데, 이 역시 더 큰 담화를 통해 극복되어야 할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해 온 바입니다.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너는" 누구일까를, "강물에 섞어 보냈다"는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를 곱씹어 봅니다. 1980년의 오월인지도, 1987년의 유월인지도 모를 참혹함과 지난함을 대변하는 듯한 "너"를 얼마만큼, 또 언제까지 그리워해야 할까도 잠시 생각해 보는 계절입니다. (하필 올해에는 대선도 겹쳐서 더더욱 그런 생각들을 자주 갖는 편이기도 하고요.)
정작은 내일 아침에 썼어야 할 글인데, 하루 일찍 얘기를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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