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정독, 베짱이 2024. 4. 19. 13:04

    
    
    
[4·19 특집]

  

푸른 하늘을



김수영 (金洙暎, 1921~1968)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김수영 시인이 1960년 6월15일에 발표한 작품. 4·19가 일어나고 두 달이 못 되어, 투쟁의 피가 마르기 전에 나온 시. 첫 연은 다소 산문적으로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수정되어야 한다”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의 하나로 이어진 긴 문장으로 포문을 연 뒤에 2 연에서 탄알 튕기듯 선명한 언어들을 던지며 산문에서 시로 날아오른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 공기처럼 당연히 누리는 자유는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투쟁 덕분이다. 아무도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자,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것, 하늘을 바꾸는 혁명은 고독한 것이다. 고독해야 성공한다.
‘자유’ ‘혁명’ ‘고독’이라는 묵직하고 가슴 벅찬 단어들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지지만 생경하지 않고 산문적이지도 않다. 시의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글 이전에 삶의 밀도가, 고통의 밀도가 아주 높기에 김수영의 시는 살아남았다.

- 최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