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4. 4. 6. 15:08

  
  
   
   껌 
    
 

 

      종이를 열자 
      반짝이는 은색이었다 
      무수한 햇빛이 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너무 환하게 웃는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벌써 몇십 년째 입을 우물거리고 있다 
    
      - 김선오, '껌 종이' 중에 ("사랑에 대답하는 시", 아침달, 2021) 

  
   
   
   껌을 좋아한다며 
   종류도 여러 가지인 걸 차곡히 쌓아놓는 버릇 
   한 번도 같은 종류를 꺼낸 적 없었고  
 
   문학회 후배가 낙서장에 대고 썼던 얘기  
   단물 다 빠지면 아무렇게나 툭 뱉는 인연 같아   
   후배를 그런 취급하지는 말아 달라던 읍소였고  
   졸업하고 선배들을 그런 취급했던 건 그 후배   
   
   성공하지 못하면 서러운 법  
   하다못해 부모님 장례식장에 면이라도 서려면 
   
   그립다는 말 한 마디조차 못해본 채로 
   껌이 되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았어 이젠 그만 
   한 번 뱉은 껌을 도로 씹는 일도 없으니까 
 
   무턱대로 전화를 걸었는데 
   생일 축하한다고 짧게 십여 초 통화를 했고 
   무덤덤한 말투에도 반가운 인사는 있었고 
   그랬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일인 법  
  
   싸구려 껌 한 통이 못내 그리울 때 
   그 당당했던 찌질함이 참 그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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