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너무 이른 기다림,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 :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 ㅡ 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지, 1999)
오랜만에 황지우 시집을 다시 꺼냅니다. 벚꽃을 튀밥으로 연상하는 대목은 많은 시들에서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게 없습니다만 "이 세상 한때의 웃음"을 기억하기 위해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고 손짓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다분히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는 이제니 시인을 꺼내려다가 조금 더 쉬운 황지우의 시를 택한 이유)
날씨는 영하 9도로 어제보다도 더 낮은 기온인데도 바람이 불지 않은 까닭에 조금은 더 편히 산책길을 걷다 돌아온 아침입니다. 어제부터 줄곧 강추위가 이어지는데 제 글은 온통 "봄"을 기다리는 심경이어서 이게 무슨 그리움인지 또는 애달픈 속삭임인지 스스로를 체크해보기도 합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 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한가 봅니다.
오늘의 선곡 역시 명실상부한 '가왕'인 김연우의 옛 노래 한 소절입니다.
후회 없는 하루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I_TV6strfSg?si=eUaCzZjX3Lliju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