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36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문보영, "책기둥" (민음, 2017)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1128586015
이른바 '문학도'들에겐 총 3회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고들 하죠, 그 첫째는 수십/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문창과 또 문과대 등을 포함한 '진학'의 문제요 둘째는 훨씬 더 높고 어려운 관문인 수천대 일의 경쟁률 속에서 당선 또는 입상을 통해 이루게 될 '등단'의 절차입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굳이 전공을 않더라도 또 어쩌면 등단을 하지 않아도 될 '작가'의 길에서, 영원히 갖게 될 꿈 내지 목표가 될 '문학성' 자체라고 볼 수가 있겠죠. (물론 "베스트셀러"는 별개로 전적인 '경제'의 문제이기도 해요.)
한해에만 대략 삼천여 권의 시집들이 출간되고 그들 중 단 한 명에게만 수여되는 문학상의 가치와 위상은 그래서 가장 높은 주목도를 갖습니다. 역대 신춘문예에 이어 국내 주요 문학상들의 궤적을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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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기둥
도서관에 간다. 밖에서 볼 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나 들어가면 첨탑이다. 높은 벽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달았다. 너무 큰 창은 벽을 약하게 하며 창은 지나가는 것을 모두 수긍해 버린다는 나의 생각이 들렸다고, 도서관 사서인 에드몽 자베스는 말한다.
에드몽이 쓴 글라스의 왼쪽 알에 달린 얇은 줄이 어깨까지 드리운다. 이곳은 천장이 아주 높다, 생각하자 책을 높이 쌓아야 하니까, 에드몽이 대답한다. 그는 램프의 뚜껑을 열어 기름을 채운 뒤 촛불을 켠다.
서가에는 책만이 있다. 책은 기둥 모양으로 쌓여 있다. 그 주변을 난쟁이들이 서성인다. 난쟁이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가로로 비틀어 책의 제목을 살핀다. 책기둥의 가장 아래쪽을 살핀다. 읽고 싶은 책은 늘 기둥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러자 그 책은 기둥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책기둥들은 어디론가 기울었다. 나는 기울어진 건물을 떠올린다. 피사의 사탑과 같이 똑바로 서지 못한 것들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책기둥이 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기우는 것은 어디론가 편향되니까. 심장은 왼쪽으로, 간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사람은 똑바로 걷는다. 기울어진 건물은 내부에 벽으로 치우쳐 자는 사람을 기른다, 는 내 생각을 읽은 에드몽이 나 대신 내 생각을 말한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장서들을 옆으로 치우며 길을 만든다. 이따금 난쟁이들의 숱 없는 작은 머리를 지팡이로 내려친다. 난쟁이들이 독서에 집중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그는, 책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책에 푹 빠진 난쟁이들만을 골라 때린다.
난쟁이들이 책기둥을 무너뜨리고 원하는 책을 얻는다. 다시 기둥을 쌓는다. 난쟁이들은 책을 때리고 책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럴 만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무례하니까. 책은 사랑을 앗아 가며 어디론가 사람을 치우치게 하니까. 벽만 바라봐서 벽을 약하게 만드니까. 벽에 창문을 뚫고 기어이 바깥을 넘보게 만드니까.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은 쌓여 기둥이 된다. 기운다. 치우친다. 쏟아진다. 다시 쌓인다.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책을 다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 한 권의 책은 그 위에 쌓인 책들을 집약한다, 는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고 에드몽은 꾸짖는다. 햇살이, 몇 가닥 되지 않는 얇고 구불구불한 난쟁이들의 머리칼에서 반짝인다. 빛이 그들의 오래된 생각을 때린다. 난쟁이들은 이제 지친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 책을 덜 읽었다, 고 에드몽이 말한다.
# 문보영, "책기둥" (민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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