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문단소식] 현대문학 7월호 (2023)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3. 7. 6. 14:17




점심시간,

 
 
 
   비밀 
 
 
 
   강우근 
 
 
 
   창을 뚫고 새가 들어왔다. 새가 밝은 빛처럼 날아들 때 나는 놀라는 표정을 숨길 수 없다. 빛에 의해 얼굴은 훼손되어가고 
 
   새로운 얼굴을 상상하며 이불을 뒤집어써도 소용없는 아침은 오지. 
 
   네가 나를 본다고 생각할 때 나는 오래된 장면 하나를 가졌다는 걸 알지. 
 
   왜가리, 제비, 참새, 벌새, 공작, 딱따구리...... 우리가 함께 본 새들은 많아서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일까 
 
   강가에서, 거리에서, 수영장에서, 공원에서, 놀이동산에서, 영화관에서...... 창을 뚫고 나를 쳐다본 새가 이번 한 번이 아니었어. 
 
   그때 내가 있는 모든 장소가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 낯선 상황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전화처럼 
 
   지금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새를 간호해서 돌려보낸다면, 새는 더 큰 상처를 내면서 내게 올지도 몰라. 
 
   멀어져가는 사람의 두시모습은 빛에 곧 사로잡힐 것만 같아. 비추다 만 얼굴로 네가 뒤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새에게 처음이 되고 
   처음의 모습으로 새는 죽어가고 싶어 하지. 
 
   이미 봤던 영화를 혼자서 보고 있다는 걸 알려준 건, 주인공의 집 마당에 살던 딱따구리야. 주인공이 집에서 나오면 소리를 멈추고 집에 들어가면 나무를 쪼아대던. 그래서일까 
 
   둘이서 봤던 영화관에서의 딱따구리를 말릴 수 없는 건. 갑자기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같이 
 
   오늘은 돌아다니면서 평생 듣게 될 새들의 소리를 미리 들었어. 
 
 
 
   * 강우근 : 1995년 강원도 강릉 출생. 2021년 조선일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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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 
 
 
 
   김희업 
 
 
 
   최선을 모르는 
   개는 최선을 다해 짖는다 
   멍 멍 멍 
   하늘이 컴컴해질 정도로 듣고 있다 최선을 다해 
   귀 안에는 멍이 빼곡했다 
 
   보이지 않는 
   날개 
   소리 없는 
   몸짓 
   착륙만이 유일한 비행 기록인, 
 
   눈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모서리의 세계를 탐문해가다 
   뒤늦게 발견된 지각의 멍이 지난밤을 소환한다 
   스며든 멍을 읽고 
   시간 속으로 사라질 자막, 이라고 번역한다 
 
   언제나처럼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 
   가벼움을 저버리고 점점 무거워만 가는 
   무거운, 눈 
 
   오두막처럼 서서 
   작심하고 개는 짖느다 
   도무지 낯선 세계를 향해 
   멍
   멍
   멍 
 
   그 저녁 
 
   하이얀 손짓 사이로 지는 
   뜻 모를 줄임말 몇 송이 
   멍 멍 멍...... 
 
 
 
   * 김희업 : 19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비의 목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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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집 
 
 
 
   여성민 
 
 
 
   집에 상자가 가득했다 어떤 상자를 먼저 풀어야 할까 너는 말했다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여러 집에서 자는 잠 같다 타인에게 날아가는 버릇 때문에 인간은 누워서 잠잔다지 아름다운 잠이 쌓여 집은 슬퍼지는데 후추가 든 상자를 찾지 못해 너는 쓸쓸해했다 괜찮아 네 눈에서 검은 것이 날아와 내 쪽으로 밤이 온다 안을 부드럽게 파내고 한 사람을 가득 채우는 이 밤은 마음일까 물질일까 마음이라면 내 마음에 빛이 부족해서 평생 쓴 마을을 모아야 후추 한 병 이불상자를 풀 수 없어서 너는 비닐을 깔았다 비닐을 덮고 사랑하면 천사인 걸 알게 돼 한쪽으로 상자를 밀고 그렇게 했는데 비닐에 싸인 인간은 천사보다 베이컨 같다 마음을 밖에 두른 존재처럼 천사의 마음인지 인간의 마음인지 모를 물질이 부스럭거려 눈감고 인간을 생각했다 수분 많고 관절이 있는 상자를 노동조합처럼 인간이 숨은 상자를 그러나 상자에는 천사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마지막 밤이었고 인간도 천사도 잊었지만 곰표 백설표 꽃소금 따위 단어들이 나의 밝은 세계로 남아 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고 아름답구나 아름다워서 
 
   사랑해 하고 맨 처음 말한 인간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해 무섭고 밝은 단어를 파내고 
 
   인간이 인간 안에 들어가 누워 부스럭거리며 첫 밤을 보낸 집은 
 
   사람이라는 후추 한 병 다 비울 때까지 
   눈에서 검은 것 날려 창밖에 자카란다 꽃나무와 장미와 라일락이 불타며 피어나던 
 
   인간의 집은 어디에 
 
 
 
   * 여성민 : 2012년 <서울신문> 등단, 시집 <에로틱한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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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의 웃음이 아니라, 파도와 너와 웃음 
 
 
 
   육호수 
 
 
 
   거짓말을 모르던 어린 시절처럼 너는 웃고, 그런 웃음은 신발을 거꾸로 신던 어린 시절까지 나를 바래다주지 
 
   그런 웃음을, 기억이라 쓰면 기억이 될지 슬픔이라 쓰면 슬픔이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가진 비밀이 없는 아이처럼 너는 웃고, 그 웃음을 다 적을 수 없어서 나는 그 웃음 속으로 사라지곤 해. 그럴 땐, 너의 웃음은, 
   너의 웃음처럼 투명하게 적어도 전할 수 없는 비밀이 되지, 나와 함께 
 
   이불 속, 울음을 참으며 아껴 울던 아이 때처럼 
   이런 시가 닿지 않는 곳으로 갈래? 
   네가 웃는 동안 난 
   웃음을 아끼며 웃기만 할래 
 
   가끔 넌 내 그리움까지 함께할 것처럼 
   그리움보다 먼저 울었고 
   서로의 외로움에 미안함을 느끼며 
   그리워할 날들을 그리워했지 
 
   웃음 속에 섞인 들숨처럼 
   기억 속 깜빡이는 내가 있겠지 
   세상의 바닥을 도로 긁어가던 
   파도의 손결처럼 기억이 있겠지 
 
   내일이 되면 
   내일 만나 
   내일이 되어 
   내일처럼 만나 
 
 
 
   * 육호수 : 1991년 출생.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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