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도 기행*
화석처럼 굳어버린 기억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영웅을 갈망했는지 모른다. -
새로운 신화가 입법화될 무렵엔 반드시 노여움에 흐느끼는 백성이 생겨났고, 거리마다 북적대는 장님과 벙어리에게서 생활의 위안을 삼고자 했다. 패스가 지나가는 구멍에는 반드시 파란불이 켜져야 했고, 얼굴엔 언제나 검은 태양의 흔적만이 자리를 잡았다.
시내 곳곳에 신전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간혹 첫닭 우는 소리에 놀란 사제는 어깨 가득 면죄부를 지고 풍경소리를 대신했다. 물론, 퇴락하는 골목을 범한 여인들의 죄과 역시 예전처럼 비난받지 못했다.
적어도 이 노련한 신화를 대신할만한 것은 없었다. 때때로 들끓는 도적떼가 모셔온 토템을 제외하고는, 모든 백성이 독실하기를 원했다.
설익은 양심들은 술자리만 잦아졌고, 이교도들의 자취방엔 때때로 베드로가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익명 다수였다. 최고의 형벌은 항상 책임감에게 내려지곤 했다. 아무도 태양을 저주하지 않았다. 저주할 자격이 없었다.
창궐하는 영주들은 도륙을 일삼고, 털 빠진 개들이 웅웅대는 공터에선 악취가 풍겼다. 가끔씩 청소부들만 차에 치여 죽곤 했다.
나환자촌에도 매음이 끊이질 않고, 처녀들의 하체는 점점 발가벗겨졌다. 다리에 송진을 바르곤 했다. 사제들은 영혼의 각성제를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앞을 다투어 무술을 연마했고, 다가올 전쟁의 의의를 알리는 홍보물이 명예욕을 충족시켜 주었다. 가끔씩 사제들이 데려온 처녀는 성심껏 그들에게 봉사해주는 대가로 면죄부를 지급받았다.
이윽고 이교도와의 전쟁이 발발하면, 갑옷을 입은 이들만이 살아남았다. 백성들의 추앙 속에 그들은 사제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젊은 사제들은 베드로의 후예가 되고 싶어 했다. 도덕적 알리바이는 매스컴을 통해 베드로의 부재를 알렸다.
이제 사제들은 더 이상 아침부터 면죄부를 팔지 않았다. 마을 곳곳에서 복제품이 나돌았다. 술자리에선 면죄부가 화제로 떠올랐고, 개중엔 남몰래 숨겨둔 이도 생겨났다. 위대해진 신전은 연일 백성들로 들끓었다.
현실로 다가온 신화에 충성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동맥을 잘랐다. 베드로는 끝끝내 제물로 바쳐지지 않았다. 대신 이교도들의 염통이 뉴스에 꽂히곤 했다. 말라가는 염통 위로 검은 태양이 웃고 있었다.
익명 다수는 침묵했다.
- 그리고,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이곳,
또 다른 기억들이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영웅은 몸서리쳐 우는 버릇이 생길 것이다.
* 김성한의 소설, 제목에서 인용.